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었고, 유학은커녕 어학연수 한번 못해봤는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대체로 용기는 무지에서 나온다).
외국어로 사는 것은 IQ를 30퍼센트쯤 디스카운트해서 사는 일이다. 이 30퍼센트는 한국어가 영어로 바뀌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한국어로 축적한 지식들은 생각처럼 바로바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
모국어로 쌓아놓은 사회, 문화, 경제, 역사 지식들이 빈약한 내 영어 어휘와 1 대 1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더라도 영어로 재습득해서 용어와 개념, 논리까지 재구성해놔야만 원하는 형태의 문장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복잡한 사고를 한다고 해도 입이나 글로 풀어져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으면, 나는 알고 있는 걸까 모르는 걸까? 마치 선불교의 공안 같은 질문이다.
결국 외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서 생각하고, 생각한 수준에서 대화한다. 영어가 느는 속도는 매우 느린 반면, 사고의 깊이는 빠른 속도로 얕아진다.
톨킨의 말을 빌리자면 "헤매는 사람이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모국어로는 길을 잃은 느낌 없이 결론을 찾아가는 여정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영어로는 잠시 샛길로 빠졌다가 다시 원래 가려던 길로 돌아와서 마치 계획했다는 듯 유려하게 결말을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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