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본질은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를 떠나는 것’이다. 떠나고자 하는 욕망은 태곳적부터 인류의 DNA에 새겨진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작은 집단에 불과했던 현생인류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킴으로 인해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라는 말이 창안될 정도로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생물 종으로 등극했다.
여행의 본능은 인류의 진화와 생존, 번영과 안식을 두루 가능하게 했다. 현생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자신의 영역을 점차 전 지구로 넓혀갔다. 실크로드를 비롯해 바닷길, 하늘길을 통해 인류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문화와 기술을 나누고 번성했다.
말을 타고 동물에게 화살을 쏘는 신나는 장면에는 ‘나는 짐승이다(한판 붙자)’라고 쓰여 있고,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에는 ‘아, 벌써 6시인데…(공부하기 싫다)’라는 낙서가 쓰여 있다. 온핌은 이 필기 뭉치를 수업을 다녀오던 길에 하수구에라도 빠뜨렸던 것일까? 온핌의 필기 뭉치는 800년 후 통째로 후대 러시아인들에 의해 발견되고,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중이다.
문명이 점차 발달해도 낙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낙서는 터부시되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통로이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문헌에서도 기기묘묘한 이미지의 낙서가 곧잘 발견된다. 가톨릭교회의 도그마가 인간의 삶을 강하게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사람들은 억압된 마음을 낙서로 해소하기도 했다.
가볍게 그린 그림 속에는 웃음과 풍자가 가득하다. 낙서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과 감정을 경직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수단이다.
어쩌면 과잉된 인풋으로 지친 뇌를 쉬게 하고 그 대신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 손에 펜을 쥐고 떠오르는 상념과 생각을 막힘없이 끼적거려보면 어떨까? 오늘의 낙서가 내일의 당신 일상에 인사이트가 되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오늘날의 개는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약 1만 5,000년 전, 유럽 근방에 서식하던 회색늑대를 길들인 것을 기원으로 본다. 이때부터 인류는 개와 동고동락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길들임의 미학’을 알려주는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는 나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수많은 반려동물 중에서 고양이는 인간에게 특별한 동물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靈長)’이라 칭하며 지구상 모든 생물 종들의 가장 꼭대기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유독 고양이에게만은 충성을 바치며 집사의 역할을 자처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고양이 숭배는 매우 지나쳐서 왕국이 몰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 2세는 펠루시움 전투에서 이집트를 무너뜨린다. 이는 이집트가 수천 년간 이어온 왕국의 영광을 완전히 잃고 외세에 복속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 페르시아 군대는 고양이를 앞장세우고 고양이를 그려넣은 방패를 사용했다고 한다. 고양이를 경외하는 이집트 군대가 쉽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묘수를 쓴 것이다. 당대 최고의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그 진위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러한 설이 있을 만큼 고대 이집트인들의 고양이 숭배는 굉장했다.
고대의 황금 유물을 보면 그들의 찬란했던 문화가 감탄스러운 동시에 인생무상의 쓸쓸한 감정이 찾아든다.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황금 유물은 그 자태를 잃지 않고 후세까지 이어지는 데 반해, 그것을 두르고 있는 인간은 뼈만 앙상한 채로 발굴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몸을 황금으로 치장한다 한들, 인간은 결국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플렉스 해야 할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아닐까?
사슴뿔은 매년 자라므로 무한한 생명력을 뜻한다. 또한, 하늘로 뻗어나가는 아름드리나무는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를 연상하게 한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상징이었던 사슴뿔과 나무가 (금)관 장식에 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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