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재킷은 가격이 꽤 나가죠. 중고도 비싸고."
"빈티지일 경우에는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 아가씨도 역시, 음, 그렇지."

그냥 얼굴이 닮았다는 점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다.

"죄송해요. 잘 생각해 보니까 제가 물어보면 될 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머나, 프로한테 맡기는 편이 좋아요."

인테리어를 할 때 현관의 미닫이문은 틀부터 시작해 전부 바꿨다. 덕분에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여닫힌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고향에서도 그렇지만, 동네 아주머니는 무적이다.

그러자 다노우에 군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와아, 미쿠모 씨는 살아 계셨나요?"
"그게 무슨?"
"그때, 102호실을 비운 단계에서는 정말로 돌아가셨는지 어떤지 실은 확실하지 않았거든요. 잠깐만요. 날짜를 좀 확인할게요."

벨트 파우치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조작하기 시작한다.

"집을 정리할 때 다른 세입자들한테는 미주알고주알 사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죠. 좋은 얘기도 아니니까요. 다케나카 부인은 그냥 돌아가셨다고 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전 그게 좀 꺼림칙했어요."

"저 같은 사람이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여기에서는 말해도 괜찮아요."
"미쿠모 씨는, 도망치신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도망쳤다.

"며느리 2호예요."
차남의 부인이라는 뜻이다. 실례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편리한 호칭이었다.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고안자는 야나기 부인이다. 부인의 경우는 다 외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로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이지만.

분명히 그렇다. 쓰다 만 편지지 세트. 잉크가 다 떨어진 낡은 만년필. 텅 빈 저금통. 교통 안전 부적. 휴대용 재봉 세트. 종이 달린 네쓰케쌈지나 주머니 따위의 끈에 다는 조그만 세공품. 다리가 휜 돋보기안경. 단행본 사이즈의 천 북커버. 새것인지 얇은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

다케나카 며느리 2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증금 없음, 복비 없음, 보증인 없음. 첫 방세는 연금이 들어온 후에 후불로 내도 됨. 게다가 어머님은 당장의 생활비로 쓰시라면서 2만 엔을 빌려주셨어요."

미쿠모 씨, 노숙자가 되기 직전이었거든요―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선생’인지 뭔지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네요. 애인인지 제자인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루아르 강 고성 투어. 언젠가 가고 싶다고, 헤어진 아내와 얘기한 적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가요. 둘 다 백발이 되고 나서.

"그러니까 전화가 온 후 한 달 이상 기다렸다가 102호실을 비운 건, 계약서에 명기된 대로 행한 공정한 수속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일해서 자식을 고등학교까지 보낸 건 대단한 일이었겠죠. 지금처럼 복지가 잘되어 있지 않은 시대니까."

‘파스텔’에서 생활이 안정되자 미쿠모 가쓰에 씨는 외로워졌을지도 모른다. 딸이 걱정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실례합니다."

문틈으로 내다본 사람은 긴 갈색 머리의 젊은 여성이다. 구깃구깃한 트레이닝복 상하의. 자다 일어나 눈부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다.

"세 달쯤 전부터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생추어리’에도 전혀 오지 않고,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 되고. 사나에 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쪽은 미쿠모 사나에 씨의 근무처를 아십니까?"
"그런 개인정보를 알려 드릴 수는 없지요."
딱히 이런 대화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현대의 부동산 관리 회사는 먼 옛날의 공동주택 관리인과는 다르다. 만사에 계약이 우선이고, 위반하면 아웃당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스타차일드’는 종교 단체가 아니에요. 교의 같은 건 없어요. 더욱 고차원의 채널링을 하기 위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요, 바깥 사회에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여기 멤버들처럼 집을 나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모두 제대로 일을 하고 있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도 키우고 있어요."

"고차원의 우주 정령과 교신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세에서의 사명을 가르쳐 준대요."

굉장하네, 하며 감탄한다.

"스기무라 씨는 비관론자로군. 뭐, 당신의 인생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만."

꼭 한마디가 많다.

벨, 북, 링과 캔들.

"벨은 종, 북은 그냥 책이 아니라 ‘더 북’, 즉 성서를 말하는 거고, 캔들은 양초. 이 셋은 마녀를 상징하는 아이템일 거예요."

"책에서 읽었어요. 옛날에 교황이 죄인을 파문할 때 종을 울리고, 불을 켠 양초를 하나하나 끄면서 선고했다는군."

거기에서 유래하여 이 세 단어의 조합이 마녀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근 사람들이 특별히 차가운 것이 아니다. 숨막히는 지연地緣의 속박을 싫어하는 우리나 그 윗세대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만들어 온, 현대 일본의 평범한 지역 사회의 모습이다. 대도시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거의 완성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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