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지. 얼마나 무서운 게 많을까."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엘릭시르, 2014)_셜리 잭슨※
오늘은 2월 20일. 소위 말하는 오십일(五十日한 달 중 5, 10이 붙는 날과 말일을 뜻한다. 주로 거래 대금의 지불 일자이다)이다.
일 년 중 2월과 8월에는 경제 활동이 저하된다느니 해서 장사꾼들은 이때를 불경기의 달이라고 한다.
포스트 수험생. 우편함을 말하는 그 포스트가 아니라 ‘포스트 프로덕션’인가 하는 말의 그 포스트.
그것은 어떤 존재인가.
한가하다.
가게 이름은 ‘파인애플’이라고 한다. 다만 가게에서 파는 카레에 파인애플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가게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을 먹어도 꽤 맛있다. 일단 도미오의 인생은 회사를 그만두어서 잘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문이 열리고 또 몇 사람이 들어왔다.
―어?
패널에서 그 성의 데생이 사라지고 없었다.
‘탄탄멘’은 중국에서 유래한 매콤한 면 음식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아시아에 퍼져 있다. ‘담담하다’의 일본어 발음 역시 ‘탄탄’으로 같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말장난.
―모두 너처럼 손이 안 가는 학생이면 좋을 텐데. ―너처럼 손이 안 가는 학생은 끝까지 손이 안 가게 해 주어서, 정말 계산대로야. 고마워.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래요?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저도 기뻐요.
그림 속의 숲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린다. 신은 눈을 깜박였다. 잘못 본 것이다. 연필로 그린 데생이 움직일 리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냄새가 난다. 뿐만 아니라 바람 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버리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이상하다. 어제, 버리면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일은 그나마 낫다. 오늘은 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왕따인 시로타는 입이 무거울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들려줄 친구가 없으니까.
왕따인 시로타는 신에게 흥미라곤 갖고 있지 않다.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에는 흥미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시로타에게 신의 분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할 방법이 없을까.
벚나무였다면 적어도 꽃놀이 명소가 됐을 텐데, 공원 담당 공무원에게 그런 재치는 없었는지 칙칙한 상록수뿐이다.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오늘 만난 거니까, 설령 고백하고 고백을 받아서 막 사귀기 시작한 포스트 수험생 커플이라고 해도 어색한 게 당연할 것이다. 하물며 신과 시로타는 커플이 아니다. 커플이라는 것과는 은하계의 이쪽 끝과 저쪽 끝만큼 떨어져 있다.
아바타. 가상세계에서의 분신. 인터넷 사회에서는 그것을 사용해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속의 도시에서 살 수 있다. 프로필 소개 사이트에서는 글자 그대로 아바타가 자신의 ‘얼굴’이 된다.
"그림 속에 들어간다는 건 작가의 영혼 속에 들어간다는 거야."
"성을 그린 작가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호기심만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거,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떤 영혼이 지배하고 있는 장소인지 알 수 없는데."
"네 머릿속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었어. 의식이 그대로 아바타에게 옮겨지는 거야."
그때 신은 깨달았다. 시로타가 그렇게 목소리를 낮춘 까닭은 스케치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귀를 꺼려서가 아니다. 스케치에게 들릴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것도, 본 걸 그림으로 그리는 것도, 전부 머리가 하는 일이야."
"나라면 괜찮아. 만일 거기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도 상관없어.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그런 뜻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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