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련의 히로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원수를 쏘면 절호의 우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나로 하여금 한스 예거를 쏘게 하라. 그 의도는 성공했다. 군은 제6군 포로를 신문하기 시작했고, 각 전선에서는 정보를 모을 대상자 목록에 한스 예거의 이름을 올렸다.
개별 병사에게는 각 병과에 특화한 정신성을 갖추는 것이 요구되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전화戰火 속에서 선별을 거쳐 살아남은 병사들의 정신은 병과에 최적화되기 마련이다. 만약 보병에게 요구되는 정신성으로 저격병이 되면 단 하루 만에 저세상에 갈 테고, 저격병의 정신성으로 보병이 된다면 싸우러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살아남은 보병은 대담하고 거칠며, 저격병은 냉정하고 음울하다.
독일인을 죄다 죽여버리자는 예렌부르크의 논법은 소련이 국내에서 방어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는 귀중히 여겨졌다. 그러나 승리를 앞두자 ‘독일인’과 ‘적 병사’를 동일시했기에 성립했던 이 논법은 위험한 것이 되었다. 붉은 군대가 그의 말을 신봉한 채 독일에 쳐들어가면, 전쟁 종결 후인 장래에 화근이 되고 만다.
고갈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총을 들려 ‘국민돌격대’라고 명명하고, ‘독일인을 몰살시키러 오는 붉은 군대에 저항하는 길은 전 국민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뿐이다!’라고 전하는 괴벨스나 히틀러에게 예렌부르크의 공격적인 선동은 설득력을 부여했다. 따라서 독일은 그 작품을 인용하는 것을 넘어 ‘독일인의 피를 마시자’라느니 ‘금발 여자는 전리품이다’ 같은 가공의 프로파간다 작품을 위조해 독일로 접근하는 붉은 군대에 대한 공포를 부지런히 퍼뜨렸다. 그렇게 예렌부르크의 증오 캠페인은 나치 독일의 전의를 지탱하는 데 이용되었다.
"슬프지만 아무리 보편적으로 보이는 논리도 절대자 한 명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야. 당대에 일종의 ‘사회’를 형성한 인간들의 합의로 만들어지는 거지. 그러니까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은 없어. 전쟁은 그 발로야."
옳아. 여성에게 가하는 폭행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냐. 다만, 나는 적지로 돌격하는 자주포병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너무 자주 들었어. 존경하던 지휘관이 뒤에 줄 세운 부하 열몇 명과 함께 여자를 나눴다고 떠들거나 히죽거리는…… 그런 모습을 지켜봤어. 충격적이지만 그 지휘관이 악마였던 건 아니야. 이 전쟁에는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성질이 있어. 나는 그걸 말하고 싶었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성질.
소련 병사들은 그걸 목격했다. 붉은 병사 중에는 세라피마처럼 고향이 불탄 자도 있고, 갓난아이가 벽에 패대기쳐져서 죽은 모습을 본 자도 많다.
"인종차별이 심하고 노동자가 억압당하는 곳이더라. 그런데도 선거 제도가 있으니까 자기들은 자유롭다고 믿어서 진전될 일도 없어. 어떤 의미에서 귀족제 이상 가는 기만과 착취야. 지식인이나 시민은 어떨지 몰라도 대중지 신문기자는 죄다 멍청하더라. 성적인 질문을 던지는 놈은 죽이고 싶었어. 나를 서커스 곰처럼 대하더군. ……그래도, 친구가 한 명 생겼어."
"세라피마 동지,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적을 쏴라. 그리고 나처럼은 되지 마."
飛地. 한 국가에 속한 영토지만, 지역적으로는 다른 국가의 영토에 둘러싸여 존재하는 땅.
저 병사는 사기를 잃었다. 그러니까 총살당했다. 죽여달라고 비명을 지른 병사를 올가가 쏘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엔카베데가 사기를 잃은 병사를 처단했다는 명분이 생기자,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서 아군 살상이라는 잔혹한 문맥이 사라졌다.
문득 세라피마는 신기했다. 인간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의명분에 얽매이는 걸까?
"세라피마, 전쟁이란 건 진짜 악취미란 말이지. 전쟁에서는 원하는 대로 수단을 선택할 수 없어. 어떻게 위장할지도…… 이봐…… 잘 들어, 빌어먹을 공산주의자 러시아인. 내 마지막 말을 들려줄 테니."
"뒈져라, 창녀 소대. 뒈져라, 소비에트 러시아. 나는 긍지 높은 카자크의 딸이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소용돌이치는 물이 배를 집어삼키듯 세라피마의 감정이 정리되었다. 되살아난 왼손의 감각이 저격수가 지닌 한 줄기 살의로 바뀌었다. 그가 다루는 소총의 조준선이 붉은 군대 병사들의 머리로 향했다.
우리는 앞으로 평생 서로를 잊지 않으리.
배는 멈출 줄 모르고 러시아로 향했다.
전쟁이 끝나려 한다.
"스탈린은 무자비한 사내이며 그 체재는 공포정치였다!"라고 외친 흐루쇼프의 말을, 국민 대부분이 ‘이제 그런 말을 해도 되는구나’라며 안도하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며 받아들였다.
스탈린을 숭배한 정치가들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그런데도 스탈린만 나쁘다고? 하지만 그때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측근이 아니었나?
귀환병들은 또 다른 당혹감을 느꼈다.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였다면, 그것을 떠받들며 싸운 우리는 대체 뭐였지?
"그야 물론 스탈린이 무자비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볼고그라드라는 낯선 이름의 도시에서 싸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우정이 영원히 이어질 수 있을까. 세라피마는 의문이었다.
크고 작은 얼음을 부수며 나아가던 선체가 각종 사회적 모순으로 타격을 받아 언젠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배가 가라앉으면 보트에 나눠 타서 혹한의 바다로 노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자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조국전쟁만은 보편적인 ‘국민의 이야기’로서 존재한다. 셀 수 없는 인명을 잃으며 방어 전쟁에서 강대한 독일군을 맞받아치고 마침내는 인류의 적 나치 독일을 분쇄했다는 사실은, 소련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찬란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로 강화되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구를 있는 그대로 읽자 이리나가 일어나 다가왔다. 가까운 의자에 앉아 있던 이리나는 여전히 비쩍 말라 있었다. 둘 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전쟁 이후로 육식을 그만두었다.
세라피마가 말했다.
"이 여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쓰고 싶은 이야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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