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떠날 필요가 없었다. 월영시든 회사든.

어떤 때는 혼잣말을 하면서 있지도 않은 친구와 논다고 하고, 또 어떤 때는 집안을 엉망으로 어질러놓고는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고 둘러댔다.

‘…도로공사 현장에서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사체가 나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폭우로 무너져 내린 강원도의 한 도로공사 현장입니다. 오늘 새벽 이곳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이….’

나는 미용사다. 낮에는 이승의 손님을 받고 밤에는 죽은 자들을 상대한다. 망자들은 두고 떠난 자들의 꿈속에 가기 전에 혹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영 떠나기 전에 미용실에 들러 단장을 한다.

산 사람들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지며 속 이야길 털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나서듯 망자도 기구한 사연을 나에게 털어놓고 간다.

미용실이라는 곳이 원래 머리만 손질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챠밍 미용실이다.

노인네가 살아 있을 적에도 시끄럽더니 여전히 시끄럽다. 저 목청이면 성악을 해도 대성했을 텐데 욕하는 일에만 쓰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량한 건 누가 내 밥그릇에 손을 대지 않았을 때나 허용되는 가치라고. 누가 내 밥그릇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바로 물어뜯을 자세부터 취하는 게 사람이야.

여자가 슬프게 웃었다. 가슴이 조금 쓰렸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다. 여자는 당장의 복수를 위해 영원의 고통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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