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에는 갑마장길이라는 훌륭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예로부터제주에서 생산하던 상급 말은 임금께 진상되었는데, 이를 ‘갑마‘라고 불렀다. 갑마장길은 바로 그 갑마를 키워내던 목장의 흔적을 따라 만들어진 길이다. 전체 코스를 다 걸으면 넉넉잡아 7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긴 편이라 10킬로미터로 단축한 코스인 ‘븐갑마장길‘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제주말로 ‘쫄븐‘은 ‘짧다‘라는 의미다. 이마저도길다고 느껴진다면 따라비오름에서 출발해 가시리의 들판을 지나 유채꽃프라자까지 이어지는 3킬로미터 핵심 구간을 걸어보길 권한다. - P325
제주에는 대흘리, 와흘리 등 육지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이름 속 글자 ‘흘‘은 제주말로 깊은 숲을 의미한다. 선흘리역시 제주의 깊은 숲 곶자왈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선흘리로 왔다. 모든 생명이 잠시 쉬어가는 계절이었지만, 선흘리는겨울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는 듯이 푸른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결핍의 계절에 더 아름다워진다. - P339
결국 이야기는 모두 길 위에 있었다. 섬을 그저 관광지로 바라보는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고 싶어 마을 안 올레와 푸르른 밭담길을 걸었다. 드센 바람에 흔들리고 뙤약볕에 찡그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걷고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멈춰 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며 풍경이 말을 걸어올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 느린 여행의 결과물로 수십권의 스케치북이 남았다. - P348
아직 가보지 못한 마을이 많다. 그 사실에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을느낀다. 새삼 제주도가 무척 큰 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 여행에는 가방에 간식거리를 넉넉히 챙겨 가야겠다. 석양에 붉게 물들어가는 돌담길에서 혹은 벚꽃이 흩날리는 오름 기슭에서 당신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from. 리모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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