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린 양들이 레일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게 보인다. 레일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양들이 니콜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 마치 울음소리 같은 전기톱 톱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불개미 떼가 검은 전갈 한 마리를 에워싸고 물어뜯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이가 아빠의 말을 떠올린다. 〈집단은 언제나 개인을 이기게 돼 있어. 그만큼 집단은 힘이 세.〉

니콜은 〈단결이 곧 힘이다〉라는 목장의 사훈을 빤히 쳐다보다가 울타리 안 양 떼로 시선을 돌린다.

양은 인간이 최초로 가축화한 동물 중 하나다.

이미 6천 년 전부터 인간은 양젖과 양고기를 먹었고, 양털과 양가죽을 사용했다. 양 뼈 또한 화폐를 만들거나 일종의 주사위 놀이인 오슬레에 썼다.

양 소비는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2억 마리의 양이 존재한다.
매해 6억 마리가 식용으로 도축된다.

「Vox populi vox dei.」
모니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무식하기까지 하네.
「〈민심은 천심〉이라는 라틴어 표현이야.」

집단의 힘을 활용했을 뿐이야. 〈단결이 곧 힘이다〉라는 우리 목장의 표어처럼 마오쩌둥도 힘없는 자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힘 있는 자들을 무너뜨리게 했어. 그 덕분에 중국 인민들은 그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던 황제와 고관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을 수 있었지. 그리고 기근에 허덕이던 중세 시대에서 벗어나 교육과 근대식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어. 마오쩌둥은 산업을 발전시키고 농업을 근대화했지. 그의 지도하에 중국 민중은 도로를 닦고 수력 발전용 댐을 건설했어.

마오쩌둥이라는 지도자가 자신이 이끄는 〈인간 무리〉의 생각을 읽어 내고 그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야.

「개신교의 신은 승자들을 사랑하고,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해 강자와 약자를 가려내지. 이기적인 이 두 세계관은 노동자 계급의 빈곤과 착취를 낳았어. 스스로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돈을 좇는 경쟁에서도 실패했다고 여기던 〈인생 낙오자들〉이 느끼는 불행감과 복수심의 원인이 됐지.」

양을 키워 번 돈으로 공산주의 운동과 전 세계 민중 혁명에 자금을 대고 있어. 나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자 하는 일이지. 그쪽 사람들은 아빠를 〈속이 빨간 억만장자〉라고 불러.

난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꾸고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삶의 근간으로 삼고 있어. 민중이 계급 투쟁을 통해 타락한 부르주아들과 이기적인 자본가들에게 승리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단다.

세상은 본래 모순투성이야. 가난한 사람들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건 아이러니하게도…… 부자들이지. 과거 로베스피에르나 레닌 같은 위대한 혁명가들, 그리고 오늘날 마오쩌둥이나 피델 카스트로 같은 혁명 지도자들은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그들은 피착취 계급을 단결시켜 착취 계급을 굴복시키게 만들었지.

「맞아. 네 이름 니콜을 따온 그리스어 니콜라오스nikolaos는 〈승리〉를 뜻하는 nike와 〈민중〉을 뜻하는 라오스laos가 합쳐진 말이야. 〈승리하는 민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폰들이 힘을 합쳐 단결하면 제아무리 강한 상대 말도 맥을 못 추게 돼. 가장 약한 폰들이 가장 강력한 퀸과 킹을 무너뜨리고 말아. 끝내 민중이 승리한다는 뜻이지.

저 양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 거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착취당하는 사람들, 노동자들, 사병(士兵)들이. 그 이유가 뭔지 아니? 숫자가 제일 많기 때문이야.

세계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원후 1년 세계 인구는 3억 명이었다. 이후 1800년에 처음으로 10억 대를 돌파한 후 불과 120년 만에 10억이 더 늘어나 1920년에는 20억 명으로 증가한다.

다시 40년 만에 10억이 또 늘어나 1960년에 30억 명을 기록하더니 15년 만에 10억이 더 증가해 1975년에는 40억 명에 이른다.

인구 증가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고 IQ 보유자는 미국인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다. 세계인의 평균 IQ가 대략 1백이고 아인슈타인의 IQ가 160인데, 그는 250에서 3백 사이로 추정된다.

봤지? 미국 선수는 실력이 없는데 거만하기까지 해. 이 경기는 미래 지향적인 인간과 과거 지향적인 인간의 대결을 보여 주고 있어. 전자는 차분하고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반면 후자는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럽지. 당연히 스파스키가 이길 수밖에 없어. 그의 승리는 결국 집단주의 모델이 개인주의 모델보다 우월하다는 결정적 증거나 다름없다고 봐.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가슴이 짓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혼자 있을 때만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불행한 둘보다 외로운 하나가 낫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가능하다는 인식만 있으면 돼. 그걸로 충분해.

이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핀란드 병사가 있다. 그는 시모 해위해라는 엘리트 저격수였다.

중상에서 회복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지만 그는 강연을 할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은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가짐〉뿐이라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 선조들은 두려움에 떨며 살았어요. 포식자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 날씨와 굶주림과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 선조들의 일상을 지배했죠. 그럴 때 가족의 존재가 그들을 지켜 주었어요. 다 같이 힘을 합쳐 두려움에 맞설 수 있었으니까요. 같이 도망치고, 같이 사냥하고, 같이 살아남았죠.」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한 말임을 모니카는 알고 있다. 파스칼 또한…… 인간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런 진실을 말하기에 누구보다 적임자였을 것이다.

「<나는 선물을 주는 그리스인들이 두렵다.> 그리스인들이 거대한 목마를 선물하겠다고 하자 트로이아인들이 했던 말이죠.」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좌우명은 <video et taceo>, 즉 <나는 진실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였다.

말년에 엘리자베스 1세가 약이 바짝 오를 일이 한 가지 있었다. 후사가 없었던 처녀왕은 자신의 철천지원수였던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제임스에게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혼자면 더 빨리 가지만 함께면 더 멀리 간다.>」

모니카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대답한다.

「한심한 소리는! 게다가 그건 틀린 말이야. 혼자면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간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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