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병탄"
도량이 커서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소년 본인에 대한 프로필은 보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살해된 그의 부모가 기삿거리가 되었다.

"지방 사람들은 도시 사람보다 어수룩해 보여도 한번 안 된다고 마음먹으면 요지부동이에요. 어머니 입에서 가즈미는 그 여자 아이고, 내 손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지만서도."

"걸리면 뭐든 다 들통이 나는군요."

외삼촌은 유전자 검사로 고지로와 가즈미가 부자지간으로 판명되는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매사에 눈치가 빠른 인물이라면 그런 식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어울린다.

"지금도 시바노 가즈미라고 불러요. 나는 반대했습니다. 데라시마라는 성으로 바꾸자고. 그런데 가즈미가."

―아버지의 가족들이 불편해할 거예요.

자기를 학대하고, 보험금을 노려 살인까지 계획했던 어머니에게 죄송함을 느낀다. 그것이 시바노 가즈미에게는 진정한 갱생일까.

그런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게 타당한 선악의 구별일까. 본인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까.

"‘검은 메시아’라고 합니다. 인간이 아니고 괴물 같은 거죠. 그게 여기저기서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나, 아이를 희생물로 삼는 범죄자를 퇴치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괴물을 시바노 가즈미가 보았다고 한다.
―정말이에요, 아버지.
그 괴물은 나예요.

인터넷 사회를 그다지 잘 알지는 않지만, 거기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항상 ‘진실’이고 ‘진정한 자신’을 이야기한다고 믿을 만큼, 나는 순박하지 않다. 특히 이런 주제를 둘러싸고는 단순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양상이 재미있어 끼어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데루무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글에는 그들을 그렇게 반응하게 만드는 흥미 이상의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 사람들은 그냥 주저앉아서 언젠가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니,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구원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

―아버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요. 내가 한 짓은 잘못된 거예요.

―자기들만이 진실을 안다고, 정의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린다구요.

유체이탈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건강한 사람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시바노 가즈미에게 이것은 일종의 긴급 피난이자, 경도의 괴리 증상이었으리라. 그가 처한 가혹한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청소년 사건은 대부분 학교나 가정에서 발생한다. 학교와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굳게 닫힌 밀실이다.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해도 결말은 늘 애매모호하다. 구원받아야 될 자가 구원받지 못하고 상처는 그대로 방치된다. 가해자는 보호를 받아 제재받지 않는다.

죄악이 지상을 활보하고 있다. 정의의 가치는 티끌보다 가벼웠다.

"그래도 우연일 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다만 세상은 아직 쓸 만하구나. 우연이 정의를 행사할 때도 있으니까."

친딸을 건드릴 만큼 정신의 균형을 잃어버린 남자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