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콜리에게도 그리워할 순간이 생겼다. 투데이와 주로를 달릴 때다.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콜리는 또 한 가지 보경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보경은 은혜에게 손을 뻗으면서도 입으로는 연재의 이름을 제일 많이 꺼냈다. 입과 눈이, 손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고단수였다.
콜리는 연재가 하는 말들, 제 몸이 될 부분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유독 빛나는 연재의 눈을 보았다. 사람은 아주 가끔, 스스로 빛을 낸다.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
사막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외딴 오두막같이,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이 가끔씩 들러 쉬고 가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곳.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은혜는 사람이 피곤했다.
은혜가 기억하는 아빠는, 은혜가 처음 휠체어에 앉았을 때 옆에서 같이 휠체어에 앉아 병원 복도에서 경주를 하던 사람이었다.
민주는 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사람만 이렇게 잔인한 거 같아요."
은혜는 연재의 무조건적인 순응이 결국 관심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알았다. 그 후로 은혜는 연재에게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대신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저는 투데이를 살리고 싶어요. 제 파트너니까요."
가축이 된 짐승과 인간과 친한 몇몇의 동물들 빼고 모든 동물들은 몇 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요. 인간도 맨발로 다니면 돼요. 그럼 거리는 실내처럼 깨끗해질걸요."
"우리 과 농담 중에 앞으로 수의사가 되려면 기계과를 가야 된다는 말이 있거든요."
"조금 다른 연습을 하던데요." "예?" "가장 느리게 뛰는 연습요."
"내 시간은 멈춰 있어."
화재가 난 빌딩 속에 있던 소방관을 기다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어. 반드시 살아서 나오리라 믿고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저는 호흡을 못 하지만 간접적으로 느껴요. 옆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행복해지면 돼요. 괜찮지 않나요?"
"가족들의 불행을 마주 본다는 건 내가 외면했던 내 불행을 마주 보는 거랑 같거든."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 척하면 안 되지." "…." "본디 어른이란 학생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어야 하는…"
이해받기를 포기한다는 건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연재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에 사사건건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저렇게 행동하면 저렇구나, 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지 싫어해서 그러는지 따위를 생각하면 너무 많은 이해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적어도 지수를 만나기 전까지, 연재의 세계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였다. 적막이기도 했고.
콜리에게 알려줘야겠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연재는 체육대회 날로 돌아가 운동장 옆 스탠드에 보경과 은혜, 그리고 지수와 콜리를 초대했다면 레일을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뛰어 1등으로 들어갔으리라 확신했다. 물론 열한 살,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앞으로는 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연재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