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부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한은 나라가 크고 백성이 많아이제 강병으로 멀리서 쳐들어왔으니 그 서슬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군사가 많은 경우에는 나가 싸워야 하고, 군사가 적은 경우에는지켜야 하는 것은 병법가(家)의 원칙입니다. 지금 한나라 사람들은천리 길에 군량을 날라오니 오래 지탱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으며 들의 곡식을 모두 비워놓고기다린다면, 저들은 반드시 한 달을 넘기지 못해 굶주리고 피곤해서돌아갈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굳센 군사로 육박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의 말을 수긍하여 성문을 닫고 굳게지켰다. - P343
한나라 사람들은 공격해 보아도 이길 수 없고 사들이 굶주리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때 답부가 수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그들을쫓아 좌원(坐)에서 싸우니 한의 군사들은 크게 패해 한 필의 말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답부에게 좌원과 질산(質)을내려주어 식읍을 삼게 하였다. - P343
15년 가을 9월에 국상 답부가 죽으니 나이가 1백13세였다. 왕이 몸소 가서 애통해 하고 7일 동안 조정 업무를 중지했으며, 예를 갖추어질산에 장사 지내고, 묘를 지키는 데 충당할 20가(家)를 배치하였다. 겨울 12월에 왕이 죽자, 고국곡(故國谷)에 장사 지내고, 왕호를 신대왕이라 하였다. - P344
20년 봄 정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3월에 태조대왕이 별궁에서 죽으니 나이가 1백19세였다. 겨울 10월에 연나(椽那)의 조의 명림답부(明臨答夫)가 백성들이 참을 수 없는 지경인지라 왕을 시해하였다. 왕호를 차대왕이라 하였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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