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생각을 할까 해. 소용이 없더라도 말이야.

만약 네 앞에 아몬드가 있어.
근데 이게 독이 있는 야생 아몬드인지,
독이 없는 아몬드인지 몰라.
그럼 너는 어떡할 거야?
그 아몬드를 먹어볼 거야?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 층짜리 계단 아래였다.

마르코가 그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 순간 노랫소리는 멈췄고 미닫이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소녀가 있었다.

그것이 열다섯, 동갑내기인 소녀와 마르코의 첫 만남이었다.

계단 밑에 마련된, 다섯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세탁된 옷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 제작된 클론이 입는 옷이라고 했다.

소녀는 마르코와 같은 용역업체에서 배정된 경비원이었다.

소녀는 마르코가 자신과 같은 업체 소속이고 심지어 입사일이 같다는 것에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처럼 고초를 토로했다. 소녀의 이름은 ‘으니’였다.

어리숙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마르코에게 ‘어렵지? 하다보면 노련해질 거야’라고 말이다. 마르코는 그 말이 참 힘이 되었는데, 으니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발바닥에 불나는 거, 아무나 할 수 있잖아."

그날 마르코는 으니의 목소리가 좋았다고, 노랫소리를 더 듣고 싶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이 ‘으니’가 아니라 ‘은희’라는 건 한참 뒤에야 의주를 통해 알았다.

"스타일이. 평소보다 더 힘줬는데."

"똑같은데."

한때 음식이 인간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인간이 지상에 살던 시절에 말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늘 무언가를 씹었고, 음식을 남기는 일이 있더라도 오로지 본인의 만족을 위해 식탁을 가득 채웠으며 음식에도 유행이 있었다는데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르코는 영 와닿지 않았다.

말을 더 얹으려던 은희는 숨을 차분히 내뱉더니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그건 먹는다는 표현보다 넣는다는 표현에 더 잘 어울리는 행위였다.

보통 열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나와 마련된 집으로 갔다. 그 집이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배정되는 집을 말했다. 지하 도시 특성상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주거용 건물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인구가 늘어 포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정책이었다.

십 년 간격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집을 배정했는데, 이는 부부의 출산 계획을 위원회에 전부 보고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쯤 아이를 가질 거라는 계획서에는 자산 규모 역시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이는 자산 규모가 기준을 넘지 못하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뜻과 같았다. 그렇게 십 년 동안 태어날 아이의 숫자는 정해졌다. 그 정책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예정 없이 태어난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망친 부부가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도.

"바다눈이야."
은희가 말했다.
"이 음료 이름."
음료의 푸른색을 가리키며.
"이건 바다."
그리고 그 안에 떠다니는 흰 점을 가리키며.
"이건 눈."
"바다에 눈이 왜 내려?"

"바다눈이라는 건, 커다란 바다 생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나 미생물이 눈처럼 내려서 붙여진 이름이야. 죽음의 잔해라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먹는 건 고래의 똥?"

마르코는 은하수가 펼쳐진 지구의 밤하늘을 보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었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스페이스 스카이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으니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모아 만든 하늘이 있으니까. 실제로 보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럼 좋은 걸 잃게 되는 거니까.

하나의 감정만으로 삶 전체를 설명하는 건 마르코에게 어려웠다. 어떤 순간은 마르코를 살고 싶게 했고, 어떤 순간은 마르코를 죽고 싶게 했다. 살아가는 건 징검다리 건너듯이 원치 않아도 어느 순서에는 반드시 불행의 디딤돌을 밟아야만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그 터널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알아. 엄마의 죽음. 나는 터널이 답답하고 싫지만 이 터널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 그래서 가끔 터널이 무너지는 상상을 해.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내 인생에 발생하는 거지. 같이 깔리거나 말도 안 되는 세상으로 뛰쳐나가거나.’

커커스를 보기 전까지. 자신이 커커스의 숨을 빼앗아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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