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관련된 전설이 살아 숨쉬다 "옛날 옛적에, 산에 약초를 캐러 간 젊은이가 산속에서 여인을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이는 여인의 뒤를 밟았다가 그 여인이 곰으로 변해 사슴을 때려잡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신이 곰과 결혼했음을 깨닫고 도망치던 젊은이는 뒤쫓아 오는 곰에게 잡히기 직전, 금강 변에 이르러 물에 뛰어들었다. 곰도 물에 뛰어들었으나 헤엄치지 못해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사람들이 그곳을 고마나루(곰나루)라 불렀다."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에 전해지는 ‘고마나루 전설’이다. 어린 시절, 이 이야기를 흑백 텔레비전에 나오던 「전설의 고향」으로 처음 접했다.
하지만 그 현장인 공주 고마나루에 가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잘하면 걸어서도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심이 얕고 물결이 잔잔한 강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 곰은 헤엄을 잘 친다!
『택리지』는 서울을 수도로 삼은 나라라면 자연히 공주를 중심으로 하는 충청도가 제2의 중심지로 각광받을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 준다. 백제든, 조선이든, 대한민국이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약초 캐던 젊은이가 암곰의 품에 안기듯 이곳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날이 왔다.
두 사찰에는 공교롭게도 항일운동과 관련되어 머물다 간 사람들의 흔적도 있다. 먼저 갑사는 기허당 영규靈圭대사가 도를 닦던 곳인데, 그는 1592년에 임진왜란 최초의 승병을 일으키고 금산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또 한 사람은 백범 김구다. 그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하고, 한때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의 특명에 따라 감형된 뒤 1898년에 탈옥했다. 그리고 몸을 숨긴 곳이 바로 공주 마곡사였다. 그는 머리를 깎고, 원종圓宗이라는 법명까지 받고는 1 년 동안 승려로 살았다.
김구가 공주의 품에 숨어들기 약 4년 전, 1894년 말에는 공주 땅에서 비극이 있었다. 바로 우금치전투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2만 명은 이곳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격렬하게 싸웠다. 아니, 싸움이라기보다 무참한 학살이었다. 지금 우금치를 가보면 제법 가파른 고개가 눈에 들어온다. 동학군은 고개 아래에서 위로 달려 올라갔고, 일본군과 관군은 고개 위에서 그들에게 기관총을 쉴 새 없이 발사했다. 농민들은 몇 차례에 걸쳐 고지 탈취를 시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6·25 전쟁 이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근대 전투로서 가장 처절하고 처참했던 나흘간의 전투는 동학군의 완전 궤멸과 동학농민운동의 종식으로 끝났다. 지금은 그런 피와 눈물, 울분, 절망과 원한은 간 곳 없고, 우금치 고개 정상에 그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만이 조용히 서 있다.
세종시가 행정수도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갈수록 커진다면 공주, 청주, 천안 등도 하나의 ‘수도권’으로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문명을 향한 젊은이의 그리움과 사랑과 안식에 목말랐던 곰의 염원, 잃어버린 왕도의 꿈과 한이 풀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전근대 한반도 최고 교통의 요지 천안삼거리 흥 /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 휘늘어졌고나 흥
에루화 에루화 흥 / 성화가 났구나 흥
누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민요인 「천안삼거리」다. 그 첫 연에 나오는 버드나무는 오늘날 천안시의 시목이 되었다. ‘천안’ 하면 곧 버드나무를 떠올릴 정도다. 강릉의 소나무에 비해 버드나무는 유연하고 관능적인 이미지가 뚜렷하다. 나무 자체가 제멋에 겨워 휘늘어진 듯,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휘휘 구불거린다. 예부터 길가에 많이 심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스쳐가며 잎을 따서 짐짓 우물물 뜬 바가지에 띄워도 보고, 잎을 솜씨 있게 잘라서 버들피리도 불어보며 희롱하는 소재도 된다. 화류계, 노류장화라는 말에서 버드나무 류柳가 나오듯 깊은 산속 고고히 서서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와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있다.
조선 후기에 유형원은 『동국여지지』에서 "동도솔과 서도솔을 합쳐 천안부를 만들었다는데, 『삼국사기』에 그런 지명은 없다"며 다섯 용은 믿지 못할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대신 지리적 장점이 천안을 만들었을 것이라 보았다. 실제로 936년에 왕건은 그동안 천안에서 조련한 군사와 개경에서 끌고 내려온 군사를 합쳐, 전열을 정비했다. 그리고 출정하여 일리천(경북 선산)에서 신검의 후백제군과 맞붙어 이겼다. 후삼국 시대를 끝맺는 전투였다.
길은 내 앞에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의 시작과 끝을 그 역사를 나는 알고 있다
- 김남주, 「길」 중
길.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스쳐가고, 부딪치고, 웃고 울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태적 공간이다. 한반도에서 천안만큼 길의 의미를 짙게 머금은 도시는 없다. 그 도시의 내일, 그 도시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떤 영광과 아쉬움이,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깃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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