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우깡 좋아하거든요. 자갈치도 좋고 꽃게랑도 좋고. 최고는 고래밥! 완전 해물 모둠이잖아요.
"이제 소진 씨 내가 가물치라고 부를 겁니다. 힘센 가물치 씨. 그러니까 호구로 살지 말고 포식자로 살라고요. 알았죠?"
꼰대 오브 꼰대
투명 글라스의 반을 맥주로 채운다. 뒤이어 소주를 톡 털어 넣는다. 비율이니 뭐니 다 필요 없고 그냥 양념 치듯 소주를 첨가하면 된다. 그게 진짜 소맥이고 그게 이 더위와 스트레스에 찌든 자신을 풀어줄 유일한 처방이라고 최 사장은 생각했다.
아무튼 가게라는 건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직원과 손님들 모두 행복한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진 이곳은 망해가는 가게의 특징들만 독버섯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여보. 나 최 사장이야. 여기 청파 제일 정육식당이고. 이 동네에서 우리 소고기 안 먹어본 사람 없잖아.
"도대체 자기가 한 짓은 생각을 안 하고 만만한 게 아들이라고, 오나가나 꼰대 짓만 하고 있어!"
"뭐? 꼰대 짓?"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텅 빈 가게 중앙에 혼자 숨 죽은 배추처럼 서 있었다.
고깃집이라는 건 단체로 와 먹어야 맛도 나고 수익도 났다. 왁자한 기분에 고기를 추가하고 술병도 늘어야 매출이 오르는 건데, 두 명이 먹으면 좀처럼 추가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 너무 부정적으로다가 생각 마시구요. 그 왜 옛날에 팔던 진로 소주 상표에 나오는 두꺼비 있잖아요. 완전 귀여운 두꺼비. 그 두꺼비에서 독만 빼시면 돼요."
지난번에 모기가 많다고 투덜댔더니 홍금보 녀석이 미리 피워놓은 듯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놈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고쳐먹으며 다시 소맥을 말았다.
"그게, 소신 있는 꼰대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문제는 자기 말만 해서 아닐까요? 대체로 꼰대들이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안 듣거든요."
"이 나이에 발전은 무슨 발전을 해. 하던 거나 잘해야지. 그거라도 지키려고 꼰대로 사는 거야. 그걸 너무 폄하하지 말란 말이야 내 말은!"
"아, 몰라! 자네같이 가족도 없고 태평한 놈은 그럴 수 있는데 난 아니라고!!"
"꼰대 아니고 상꼰대십니다. 꼰대가 버럭도 하면 진짜 상꼰대거든요. 아하하."
집에 와 방에 누웠다. 큰아들 방이다. 1년 전 아내는 코 고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각방을 제안했다. 살이 찐 뒤로 코골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기에, 최 사장은 군대에 간 큰아들 방에서 자게 됐다.
"내 말만 안 듣는 줄 알았더니 남 말도 안 듣는 게 일관성 있네. 그 사람이 맞는 말만 하니까 당신이 더 발끈하더라. 그러니 안 웃겨?"
"외식 와서 이런 말 해서 나도 그러네."
"겁이 나."
아내가 그의 말에 집중해주는 게 느껴졌다. 최 사장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내가 잘라 준 수박을 와작 씹었다. 아내가 맥주를 따라줬다. 기분이 좋았다. 장사 따위 안 돼도, 집에서 아내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 아닌가?
"이거 왜 이래! 나 꼰대야. 꼰대 시절 러브 샷 좀 하자."
아들이 또 이것저것 수다를 떨어댔다. 저 녀석, 누구 닮아 저리 말이 많은지…… 너도 늙으면 꼰대 당첨이다.
"엥? 아들 말 듣고 가게 이름을 바꿨다고요? 우와, 이름 지키는 거야말로 고집 중에 상고집인데…… 완전 꼰대 탈출이시네!"
투 플러스 원
세상은 불공평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빠는 비 오는 날만 아니면 늘 현장에 나가지만 버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고 자신의 집도 불공평투성이다. 민규는 어떻게든 불공평과 더위에 찌든 집에서 벗어나길 바랐고, 그러던 차에 발견한 곳이 있었다.
"아니, 어제 알려준 걸 반도 모르면 어떡해요? 까마귀 고기를 드셨나. 내일부터 혼자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어요?"
아빠는 공부를 못하면 여름엔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엔 추운 데서 일한다고 했지만, 편의점은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지 않은가!
"이게 브라질 작가 책인데 아저씨 어릴 때 아주 인기가 있었어. 제제가 밍기뉴한테만 속 얘기를 막 하고 그러잖아. 그게 참 좋더라고. 사람은 속 얘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거든."
"간단히 말해서 로켓에게는 때론 궤도 수정이 필요하단다. 동현이도, 우리 집도 지금은 궤도 수정이 필요한 때 같다고 아빠는 생각해."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고스톱 치다 싸는 소리 하시네. 당신은 골프 같은 거 칠 일 없으니 잘 모르는 거야. 그리고 모르는 건 좀 입 닫고 있어."
서민준은 왜 내기 골프인지를 쳐 가지고 엄마도 화나게 하고 아빠도 돌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안 먹는다고? 야! 밍기뉴, 우리 솔직해보자. 너랑 나 같은 체형들은 밥 먹었다고 뭘 더 못 먹지 않아. 그건 선택의 문제지,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치? 그리고 이 돈가스 삼각김밥 완전 실해. 돈가스 샌드위치보다 백 배 나아."
밤의 편의점
손님이 없는 한여름 밤 편의점은 냉장고 같다. 밤의 고요 속 쉼 없이 일하는 냉장고처럼, 편의점도 스물네 시간 멈추지 않고 가동된다.
"너 자취한다며? 우리 동아리 들어오면 밥은 안 굶어. 그리고 너 국문과라며? 국문과 취업 쉽지 않아. 두고 봐라. 연기 배워두면 밥은 안 굶는다. 우린 일종의 기술자라고. 몸 쓰는 기술자. 어른들 말 하나도 안 틀려. 기술 배우라고 하잖아."
하지만 다음 해 근배 역시 배고프고 할 일 없어 보이는 후배들을 동아리방에 데리고 왔고, 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대학 생활은 취업이 전부가 아니라고 훈계하고 있었다.
근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어르신 내가 말 많이 하니까 지지 않으려고 자기도 말씀을 많이 하시네.’ 그럼에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었다. 근배는 편의점 일을 만만히 여겼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했다.
"선배가 연기 배우면 밥은 안 굶는다고 했잖아요!"
"마, 그때 내 나이가 지금 너보다도 어릴 때다. 내가 뭘 알았겠냐? "
편의점은 점장님 같은 분만이 아니라 사연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었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
걱정 따위 지우고 비교 따위 버리니, 암 걸릴 일도 독 퍼질 일도 없더라. 물론 근배에게 산다는 건 걱정거리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하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너 알바
이생망. 지난 1년간 민식은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준말을 감탄사처럼 내뱉곤 했다. 특히 된소리 욕과 결합된 ‘이생망’은 그의 피폐해진 육신과 정신에 가하는 자조 어린 채찍이었다. 그나마 민식의 이번 생만 망한 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지구 전체에 망조가 든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ALWAYS
아들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휘청했다. 다행히 벽을 짚은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 놓인 갈색 캠핑 의자에 앉으니 녹음으로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담겨왔다.
편의점을 차린 것도 어떻게 보면 분주히 보내야 하는 날들이 필요해서였다. 24시간 내내 불 켜진 그곳이 방범 초소인 양 내 삶을 호위하길 원했다. ALWAYS편의점이 남편의 빈자리를 그 이름처럼 ‘언제나’ 채워주길 희망했다.
"각자를 자각해야 각각이 되는 거야. 가족이자 각각이어야 오래갈 수 있는 거고."
변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불편한 편의점 —여러 계절이 흐른 뒤 학원 골목을 빠져나온 시현의 시야에 길 건너 남영역이 들어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굴다리 아래로 컴컴한 길이 보였다. 저 길을 지나면 청파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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