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녀는 나 이외의 인간이에요. 다들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누는 것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 무쓰미가 말했다.

데쓰로는 그들의 대화를 바라보며 확신했다. 무쓰미는 미쓰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정체를 간파한 것이다.

"더는 섹스하지 않겠다고?"
"아, 네." 히로카와는 목을 움츠리듯 끄덕였다. "꼭 하고 싶으면 밖에서 하고 오라더군요. 자신은 그런 일로 화내지 않겠다고."

‘철이 들면 말이야, 아이라도 이래저래 눈치를 보잖아. 나 때문에 어머니가 울고 있으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그 애가 원하는 대로 살길 바랍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생각하지 말고. 나는 이미 잘못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한 사람은 여성의 마음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성으로 여성을 사랑하면서도 육체가 여성인 것에 괴로워했다. 자살이라는 결론은 같았으나 그곳에 도달한 길은 전혀 다르다. 다만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이른바 윤리라 불리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윤리가 반드시 인간의 옳은 길을 드러낸다는 보장은 없다. 대부분은 그다지 대단한 근거도 없는 사회 통념에 불과하다.

당신은 마음이 여자고 레즈비언이 아니면 남자의 육체를 가진 사람만 사랑하리라 생각하나 본데, 마음은 역시 마음에 반응해. 여자인 내 마음은 미쓰키의 남자 마음에 호응했지.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거야. 형태는 상관없어.

"결국은 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자신과의 차이에 괴로워한다.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분명 그렇게 말했어."

"그 말의 대답이라 해야 하나, 재미있는 말을 들었어. 남자와 여자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는 거래."

"잠깐만요. 연락처를 어디에 적어뒀는데요?"
데쓰로가 묻자 참 멍청한 질문을 한다는 듯 사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세상에 주소록이라고 적힌 노트라도 있을 것 같아? 머리 좀 써."
"앗!"

그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친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요!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1루 주자를 보지 못했다고. 그래서 꿈을 버렸다고…….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어. 아까도 말했잖아. 이 연극 속 부인의 대사는 내가 한 말이야. 내가 나카오에게 한 말이라고. 데쓰로가 말해주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왼쪽 눈에 관해서 말을 꺼내지 않을 거야. 만약 말해야 한다면 그가 죽기 직전에 할거라고. 머리맡에서 막 따질 거라고." - P522

"그렇지. 목록에 등록된 사람이 이제 겨우 스물에서 서른 명 정도야. 그래도 지금까지 가오리와 다테이시 콤비를 포함해 다섯 쌍의 남녀가 호적 교환에 성공했어. 지금부터가 중요해. 혁명은 시작되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여기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어."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었지만 너는 나를 만날 수 없었네. 그래도 괜찮은 거야……?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 녀석이 종종 이런 말을 했어.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불법이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사물을 거울에 비춰 거꾸로 보이게 할 뿐이라고. 내용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대강 그런 말이었어."
"거울에 비춘다……."

"오히려 마음의 부담은 더 커졌을지 모르지. 그래서 나도 요즘 가끔 생각해. 나카오가 했던 말을. 단순히 사물을 거울에 비춰 거꾸로 보이게 한 것뿐이지, 내용은 하나도 좋아진 게 없지 않나, 하고 말이야."

"니시와키, 그때도 즐거웠어. 왜 인간은 변하고 마는 걸까? 게다가 나쁜 쪽으로. 성공하면 오만해지고, 실패하면 비굴해지지. 나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야. 부잣집 딸과 결혼해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어.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길을 선택했어. 그런 자기혐오 때문에 사가 일행과 젠더 문제에 맞서는 데 열중했지. 하지만 그건 자기만족이었고 현실 도피에 불과했어. 그저 눈앞의 적을 쓰러뜨릴 생각만 했던 때가 그리워."

타이트엔드는 패스를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쿼터백을 지키기 위해 블록도 한다. 데쓰로는 그 사실을 떠올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빈치> 2001년 5월호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비밀》의 후속작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고 후 눈을 뜬 딸의 마음이 아내라는 설정으로 많은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작가는 ‘외모와 내면의 차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한번 꺼내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내와 딸’ 대신 ‘남자와 여자’로 바꾸어 더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특수한 주제 속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이 작가의 특기다. 젠더라는, 조금은 복잡한 개념을 다루면서도 우리 내면에 있는 남녀의 요소, 이른바 남자답다, 여자답다라는 사회적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어른과 아이, 인종, 민족, 국가 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에 여기서 던지는 작가의 질문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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