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우수雨水
겨울 그림자를 털어내며

겨울 끝자락에 서다
북한강에 청둥오리가 사라졌다. 떼를 지어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유유히 유영하던 청둥오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간자리에 겨울 끝자락을 여미는 바람만이 쓸쓸하게 분다. - P26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초입에 북쪽에서 찾아왔던 철새들이 돌아가는 시절이 되었다. 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내 몸은 여전히 한겨울인데, 청둥오리들은 봄기운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북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 P26

우수 경칩이면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다. - P26

강이 풀리면 님이 오리라는 희망을 노래한 시인이 있다. 기나긴 겨울밤을 홀로  지새우며 봄과 함께 떠나간 님이 다시 돌아오리라 기다리는 희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한시에 흔히 등장하는 ‘왕손은 돌아오실까‘王孫歸不歸 하는 구절이 바로 그런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 P27

이미 굴원屈原이 <초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대는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으시지만王孫遊兮不歸,  봄풀은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春草生兮萋‘萋" 하는 노래는  이 무렵쯤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 P27

기러기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의 의미를 포함한다. 편지를 지칭하는 단어 중에 "안서雁書‘라고 해서 ‘기러기 안雁자가  들어가는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아마도 멀리 변방으로 떠난 남편의 소식을가지고 남녘으로 날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 때문에 그런 말이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수 무렵이면 기러기는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여전히 내 님의 소식은 무망하다.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 내 고독감과 절망만이 크기를 더한다. - P27

野碧春天合 天青野色高
吾今適莽蒼 力足翔蓬蒿
已覺此身遠 亦憐歸雁勞
驚弦滿關塞 孤影墮江濤 - P28

외로운 그림자는 강물결에 떨어진다. - P28

내 몸 구석구석에 드리워져 있는 겨울 그림자를 떨어내기 전에는 결코 새봄을 맞기 힘들 것이다. 얼음이 풀리고 땅이 풀리는 우수 무렵이면 언제나 연례행사처럼 신열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 P29

유방평劉方平 <봄눈春雪>에서 읊은  것처럼, ‘날리는 눈도 봄바람을 띠고 있어飛雪帶春風, 서성거리며 어지러이  허공을 둘러싼다徘徊亂繞空‘고  했다. 차가운 눈 속에도 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땅이 풀리는 것을 보면 그 기미를 알아챌 수 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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