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운한 어린 군주 구이신왕과 팔수태후의 난정(亂政)

(서기 405~427년, 재위기간:서기 420년 3월~427년 12월, 7년 9개월)

구이신(久尒辛)왕은 전지왕의 맏아들이며, 팔수왕비 소생이다.

1. 비유왕의 전방위 외교와 나제동맹

(?~서기 455년, 재위기간:서기 427년 12월~455년 9월, 27년 9개월)

비유(毗有)왕은 전지왕의 둘째 아들이며, 왕후 해씨 소생이다.

곤지(?~477년)
곤지(昆支)는 비유왕의 셋째 아들이며, 누구 소생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에 대한 기록은 『일본서기』 웅략천황 5년(462년, 개로왕 8년) 4월 기사에 처음 보이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그는 개로왕에 의해 왜로 보내진 것으로 되어 있다

1. 개로왕의 파란만장한 삶과 한성시대의 종말

(?~서기 475년, 재위기간:서기 455년 9월~475년 9월, 20년)

개로(蓋鹵)왕은 비유왕의 맏아들로 근개루왕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이름은 경사(慶司)이다.

1. 위기의 백제와 살얼음판 위의 문주왕

(?~서기 477년, 재위기간:서기 475년 9월~477년 9월, 2년)

문주(文周, 혹은 汶洲)왕은 비유왕의 둘째 아들이며, 개로왕의 아우이다[『삼국사기』는 그가 개로왕 대에 재상격인 상좌평의 직위에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그가 태자나 왕자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1. 세 근(斤)짜리 어린 왕 삼근왕의 서글픈 치세

(서기 465~479년, 재위기간:서기 477년 9월~479년 11월, 2년 2개월)

삼근(三斤, 혹은 임걸(壬乞)이라 하고, 『일본서기』엔 문근(文斤)으로 기록되어 있음)왕은 문주왕의 맏아들로 465년에 태어났다.

1. 왜에서 건너와 왕위에 오르는 모대

삼근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오른 사람은 곤지의 아들 모대(牟大)였다. 『삼국사기』는 모대가 어떻게 해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본서기』 웅략천황 조에 그의 즉위와 관련한 기사가 보인다.

(?~서기 501년, 재위기간:서기 479년 11월~501년 11월, 22년)

동성(東城)왕은 비유왕의 아들이자 개로왕과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차남이며, 이름은 모대(혹은 마모)이다. 462년에 어린 나이로 아버지 곤지를 따라 왜에 갔으며, 478년 4월에 백제 조정의 요청을 받은 왜왕 웅략천황에 의해 백제 왕에 천거되어 귀국했다.

『삼국사기』는 이 때의 일을 동성왕 10년(488년) 기사에 ‘위나라가 우리를 침공하였으나 우리 군사가 그들을 물리쳤다.’는 짧은 문장으로 처리하고 있다. 중국 대륙 북방을 장악하고 있던 위나라가 바다 건너 한반도에 위치한 백제를 침략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편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바다 건너에 있는 위나라가 백제를 침략했다면, 당연히 배를 타고 공격해와야 하는데, 전혀 그런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위나라 오랑캐가 기병 수십만을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였는데, 그 경계 안으로 들어가니, 모대가 장군 사법명, 찬수류, 해례곤, 목간나를 보내 군대를 통솔시켜, 오랑캐의 군사를 기습하여 크게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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