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서들을 살피면서 나는 정말 한숨을 쏟아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기록들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백제는 영원히 한반도 남부의 별 볼 일 없는 소국으로 기록될 것이고, 우리는 백제의 진면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역사와 문화와 영토를 논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의 진짜 모습은 이 책에서 그려진 백제보다 훨씬 크고 대단하다는 것이다.

백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인이다. 우리는 아직 그 거인의 발 크기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겨우 다리 한쪽을 발견하고 백제라는 거인을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떠벌려댄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이다.

나는 그 거인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장을 만드는 심정으로 이 글을 썼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백제인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1. 대국(大國)의 위업을 달성한 근초고왕

(?~서기 375년, 재위기간:서기 346년 9월~375년 11월, 29년 2개월)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차남이며 언제 태어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삼국사기』 편자들은 대륙백제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기록들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판단하여 고의로 제외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근초고왕의 재위 20년까지의 기록이 전무한 것은 바로 그가 이 기간 동안 대륙백제의 안정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수 막고해가 진격을 만류하며 태자에게 말했다.

"일찍이 도가의 말에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1. 호방한 성격의 근구수왕과 숙적 고구려

(?~서기 384년, 재위기간:서기 375년 11월~384년 4월, 8년 5개월)

근구수왕은 근초고왕의 아들이며 왕비 진(眞)씨 소생으로, 375년 11월에 근초고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일본서기』에는 근초고왕이 죽은 이듬해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근초고왕이 11월에 죽었다면, 이듬해 1월을 원년으로 삼았을 수 있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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