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되게 만든다.

신라 소지왕 16년, 서기 494년은 고구려 문자명왕 3년의 일이다. 고구려 최대 판도를 이룬 왕이다.
그런데 신라 소지왕이 대동강을 넘어 청천강까지 군대를 북상시켰다. 고구려군은 호구인가?

소지왕 16년 살수는 괴산 청천으로 보는 설이 맞다고 본다. 견아성 또한 상주 견훤산성으로...

치양 즉 황해도 연백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군이 교전했다? 이 또한 어불성설이 아닌가 한다.
치양은 원주 치악으로? 보는설이 맞을듯 싶다.

이 시기 고구려는 한강유역을 석권한 시기였다.

백제, 신라가 어떻게 🤔 황해도까지, 대동강을 넘어 청천강까지...
그리고 돌아가던 고구려군이 치양성을~~~

고구려의 치양성공격은 다음해 8월~~

아! 신라박씨 영규님의 신라사랑이 과하십니다.

본책 p000.e북이라 몇페이진지는....
˝백제와의 동맹을 기반으로 소지왕은 고구려에 빼앗긴 영토를되찾고자 했다. 그래서 장군 실죽으로 하여금 고구려 지역을 선제 공격하도록 했다. 실죽은 북방으로 진격하여 대동강을 넘고 다시 살수(청천강)로 북상했다. 
하지만 살수벌에서 고구려군에게 밀려 퇴각하였고, 결국 견아성(충북 일대)까지 쫓겨 내려와 포위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동성왕이 병력 삼천을 보내 신라군을 돕자, 고구려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했다. 돌아가던 고구려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백제의 치양성(황해도 연백의 배천)을 포위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지왕이 장군 덕지를 시켜 고구려군의 뒤를 쳤다. 신라군의 급습을 받고 고구려의 대오가 무너졌는데 치양성 안의 백제군까지 가세하자, 고구려군은 궤멸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서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 부근에 있는 ‘청천(靑川)’의 옛 이름이 ‘살매(薩買)’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을지문덕이 승리를 거둔 살수대첩 에서의 ‘살수’가 현재의 평양 부근에 있는 ‘청천강(靑川江)’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지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반도 중부지역의 최북단에서 고구려어 ‘살(薩)’이 ‘청(靑)’에 대응한다는 사실과 이러한 대응이 중부지역의 최남단인 청주 부근의 지명에서도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한국미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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