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의 비는 얼마나 오래 내려야 하나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슬프고 척박한 땅에 태어났을까.’ ‘그런데 왜 문학을 하려 하는가.’ ‘그럼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내 청춘을 바치며 풀려고 했던 화두였다. 그리고 여기 실린 작품들이 그 열매다.

뭐 더 생각할 것 없이 그 옛날처럼 똑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며 밤을 밝히고는 할 것이다. 이 불행한 땅에 슬픈 역사의 비는 변함없이 주룩주룩 내리고 있으니까.

"간첩단 사건에서 3년짜리 징역도 봤어? 제까닥제까닥 사형이고, 재수 좋아야 무기, 천운을 타고나는 경우 15년이야. 3년은 무죄라는 소리야, 무죄. 신문에 났으니까 죄 안 줄 수 없었던 거지. 수양한다 셈치고 그저 죽치라구."

웃는 얼굴은 이성이었고 우는 얼굴은 감정인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중현은 오동도가 맞바라보이는 해변의 바위에 나란히 놓인 어머니의 고무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래 비가 내릴지 모르는 땅에서 너와 나는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나? 너무나 긴 대꾸다. 그저 웃고 말지…….

밥을 받아가지고 돌아서다가 중현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조그만 창, 조각난 파란 하늘에 흰구름 끝이 지나가고 있었다.

"푹 쉬씨요. 개똥은 줏어다 놨는디, 걱정시럽소. 이 자석덜언 개헌테꺼정 살괘기를 믹잉께 똥도 틀리잖컸소. 그래도 안 묵는 것보담은 훨썩 낫을 것잉께."

태준은 맥이 풀렸다. 서점동은 틀림없이 개똥물을 만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기어이 마시라고 할 것이다. 개똥은 이미 주워다 놓았다잖은가. 서 일병이 야속스러웠다.

"다 낄인 약을 차내불다니. 지리산 호랭이는 뭘 묵고 사는고."

"워디요, 알아서 나쁠 것이야 있간디요."

"성중 사람들맹키로 기피나 했으면 덜이나 원통허겄소. 호적 나이는 인자 시물둘이다요."

"무신 말씸이다요. 농새일에 비할라치면 시장스럽소. 내사 배부릉께 신간 편치만 새끼덜이 워짜고 사는지 원……."

"도대체 뭐냔 말예요?"
설립자의 영애(令愛)이시자 교감인 뚱뚱보는 체구에 걸맞게 고함을 질렀다.

저런 1주일에 50시간의 수업, 예고 없는 시험. 먹을 것 없는 제사에 절이 열두 번이라는 속담은 꼭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친정에서 뿌리를 완전히 뽑아간다는 의미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집가는 것을 죽은 사람과 똑같이 취급해 버리는 법적 조처에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그게 바로 황인종들의 오해고, 흑인에 대한 우월감입니다. 미안하게도, 백인 여자들은 흑인 하인 앞에서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황인종 앞에서는 속옷을 갈아입어요. 스피츠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옷을 갈아입듯이 말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영혼이 없는 개 앞에서 아무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처럼 황인종도 영혼이 없다고 취급하는 거죠."

"문준표 후보생 단장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준표뿐만이 아니라 후보생 모두에게 김 중령은 야수 같은 폭군이었다. 군대 이외에는 필요가 없는 사람. 군대라는 것이 있었기에 절대 효용치를 발휘하는 위인으로 통하고 있는 터였다.

사회주의,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반공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었다면 의사인 아버지가 택했을 것인가.

ROTC 학군단 학생들은 ‘반학반군’의 얼치기들로 일반 학생들의 웃음거리고 조롱거리기도 했다.

특히 대학의 낭만을 앞세우는 문과 대학생들의 야유는 노골적이었다. 대학을 군대화하는 데 앞장서는 얼빠진 이기주의자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학군단 학생들은, 너희들 졸업하고 사병 입대하고 나서 보자고 엄포를 놓고는 했다. 준표는 입에 쓴웃음을 물고 교문을 나섰다.

국가라는 위력 앞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힘을 모아 항의할 엄두도 못 내고, 세상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문형, 뭐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소. 다 운명이려니 하면 됩니다. 헌데, 이번 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나 명심해 두시오."

"거 아주 잘됐소. 난 법댈 나와서도 이 짓인데, 이것도 보기가 좀 흉해서 그렇지 벌이 쏠쏠하고 신간 편한 게 할 만하오. 인생살이 목적이란 게 한마디로 줄이면 명예 권력 돈 아니겠소. 이 세 가지를 다 갖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소. 난 눈 딱 감고 돈이나 많이 갖기로 작정했소. 결국 큰돈은 권력도 명예도 사는 게 자본주의니까."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빨까지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그건 몸살로 인한 오한 때문인지 그렇지 않은 다른 일 때문인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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