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났다. 그날로 마루 끝 기둥에다 등잔을 내다 걸었다. 등잔은 밤마다 새벽녘까지 밝혀졌다. 그래도 칠성이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건 사랑이 아녜요. 윤리의 속박 속에 자기 본심을 감춘 노예 생활이지요."

"무슨 말들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하죠? 세상일이란 일방적 논리로 풀리는 게 있고, 안 풀리는 게 있을 텐데요."

"우린 오늘 너무 기막히고 슬픈 연극을 봤어요. 우선 그 연극을 공연할 수 있게 해주신 과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과장님한테 그런 인간적인 면이 전혀 없다고 단정했던 저의 속단을 사과드려요. 저는 처음에, 과장님이 틀림없이 그들 만나기를 거절하실 줄 알았어요. 일과 중이고, 철저한 모범 사원이시니까요. 그런데 선뜻 만나셨고, 그들의 슬픈 연극 공연을 도우셨어요. 사무실도 오랜만에 사람 냄새로 가득 찼구요."

형은 아버지와 앙숙이었다. 그 정도는 상상으로 가능하지 않을 만큼 심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형은 아버지를 거미만큼도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

미물인 거미는 제 새끼가 자립을 할 때까지 키우기 위해 새끼를 등에 업고 자기의 몸을 파먹히며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인 아버지는 그 반대로 자식의 인생을 파먹고 들어 산산조각을 낸 위인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연출 솜씨는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자리바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신중히 생각해 보면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의 것이 ‘뒤로 거느리고’라면 나중의 것은 ‘앞으로 내세워서’였던 것이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의미 부여였지 아버지에게 물어본 것도, 형에게 귀띔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위급 전보는 집을 에워싸고 있는 얼음 덩이 같은 이른 아침 추위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아침의 ‘여보’는 평소의 호칭이 아니라 구령이나 호령으로 바뀌어 있곤 했다. ‘여보, 여보’가 영락없이 ‘이랴, 이랴 낄낄’로 들리는 것이다. 이놈의 말,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어서 일어나 달려라, 이랴 낄낄······. 그래서 아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문을 비집고 들 때마다 동명은 진저리를 치며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상이 달라졌응께 응당 그래야 하는겨. 요새 시상에 촌이고 서울이고가 워디 따로 있다냐. 우리 고향 아그덜도 다 똑같니라." 그분은 몸집의 몇십 배가 넘는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

나무들 사이에도 층하가 있었다. 기운 센 놈 옆에서는 기운 약한 놈은 치이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생겨난 물건들은 딴 짐승들에 비해 욕심이 제일 많은 짐승인데 어찌 고루 잘사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자네 여섯 살 적에 자네 큰성허고 나허고 저수지서 미역감은 일 생각나는가? 그때 수박밭에서 수박 훔쳐다 깨묵고, 내가 자네헌테 큰 메기 한 마리럴 잡아줬는디."

동명의 머릿속에서는 한 토막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랬었지요. 그 메기로 어머님이 매운탕을 끓이셨지요."

"그랬어, 그랬어."

강춘복은 어머니 영전에 향을 꽂고 정성스럽게 두 번 절을 올렸는데, 두 번째의 읍은 좀체로 풀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강춘복은 밤을 새우고 아침에야 돌아갔다. 다음 날 밤도 새웠다. 그리고 어머니의 관을 운구했다.

어머니는 과수원의 아버지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어머니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리라고는, 그것도 상행 야간 열차 속에서 객사를 하시게 되리라고는 우리 3남매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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