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들을 낳거든 네가 배운 대로만 가르쳐라." 그 이듬해 근필은 서른다섯으로 첫아들을 얻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소원하시던 불사를 이루고 천민으로서 시주와 공덕도 쌓으리라.
강화(江華)의 밤
수평선에서 시작해서 수평선 너머로 빠져내리는 하늘은 한량없이 넓기만 했다.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임금. 의당 그런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 어떤 어버이가 자식을 버리는 어버이도 있는가.
짐승도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 몸을 바친다. 병아리를 지키기 위해 어미 닭은 솔개와 맞서 승부가 뻔한 혈투를 벌인다. 돼지도 새끼를 빼앗기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꽥꽥거리며 며칠이고 밥을 굶는다.
중신, 그들은 생각만 해도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보나마나 작당들을 해서 미행을 반대하고 나설 것이다. 번지르르한 명분과 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이유들을 줄줄이 나열해 놓고 항복을 기다릴 것이다. 그런 그들이 싫었다. 말에 능하고 이론이 승하고 그래서 사리가 분명한 그들이 싫었다. 그들을 믿었다가, 아니 꼼짝 못하게 믿게 해놓고 결국 일은 다 저질러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안이한 아전인수 (我田引水)식의 해석이었다. 문제는 그만큼 불교가 계급의 상하와 직업의 귀천에 상관없이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직업이 천하면 천할수록 극락에 대한 염원은 강렬하게 작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최우의 고민은 극에 달하여 있었다.
평행선의 시발(始發) 대장경 판각 불사의 윤허가 내렸다는 소식을 오후에 전해들은 수기대사는 한동안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침략자의 무력이 상대적인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의 법전의 힘에 의해서 퇴치되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역사의 미화(美化)된 기록을 가져다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위한 방패막이로 삼으려 합니까?
대감은 지금 네 가지 대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 잡고 있는 괴로움을 이용하여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 고함으로써 상감을 우롱한 죄를 범했으며,
셋째 전란을 겪느라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게 되고,
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성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사를 내 어찌 찬성할 수 있으며 참예할 수 있단 말이오.
최우는 바로 이 점이 미칠 지경이었다. 죽기를 작정하고 덤비는 아낙에게 이길 사내 없다는 말이 있다. 혹시 그런 꼴이 되지 않을까 최우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상감마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설법으로 제도하시는 것이며 국왕께오서는 백성을 의식주로 이끄시는 것이옵니다.
부처님의 제도를 정신적 제도라 한다면 국왕의 치정은 육체적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과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나 둘 중에 반드시 선행하는 것이 있을 것이옵니다.
육체가 곧 정신을 담는 그릇이옵니다. 백성들의 육체적 제도가 미흡한 상태에서 어찌 정신적 제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나이까.
지금 시급한 것은 튼튼한 육체적 제도이옵니다. 판각 불사는 시기상조이니 뒤로 미루심이 어떠하시오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뜻이 화합하다니 더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소. 이는 다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부처님께서 보살피시는 것이니 당장 오늘부터 계획 수립에 진력토록 하시오."
수기대사가 굳이 그렇게 조건부터 다짐을 했던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최우의 일방적 횡포를 막기 위함이었고, 둘째 과다한 행정력의 구속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모든 중생이 바르게 행하고 닦으면 다 불타가 된다는 세존의 가르치심은 역시 진리라고 수기대사는 재삼 음미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건지려는 마음의 노력과 진실을 만나게 되는 계기의 있고 없음이 문제임을 수기대사는 이 순간에도 안타까워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어.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배꼽이 요강 꼭지가 되도록 배불리 자시는 상감께서 어찌 백성들 배창자 우는 소리를 들어? 그랬다면야 이 난리 통에 난데없이 불사를 일으켰겠어?"
글씨는 예(藝)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는 재주이며 재주는 타고나는 것이었다.
"종교를 정치와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당초부터 그 생리는 판이한 것이지요.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 뿐이며 정치의 위에도 아래에도 놓이지 않습니다." 수기대사는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이 말을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비서성시랑(秘書省侍郞) 이규보(李奎報)가 어떨까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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