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조금은 도발적인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말한다.
"안 마시면?"
남자가 잠시 숨을 돌리고 대답한다. 여전히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평생 볼 일 없는 거지."

문학작품의 ‘해석’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조각씩 찾아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선 세심한 독서다.

『데미안』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헤세와 그가 살아간 시대의 독일에 대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데미안』을 해석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
 
작가 외에는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다

당시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유롭고 고집이 세며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던 헤세는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엄격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헤세는 학교 무단이탈 등의 문제를 일으키다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1906년에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가 발표된 후에는 작가로서 그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헤세가 1946년에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오히려 그의 고국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것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헤세의 작품들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1919년 이래로 스위스에서 살았던 헤세는 지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최소한 주류에 속하는 독일인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헤세는 1962년에 스위스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몬테뇰라에서 눈을 감았다.

내면으로의 길을 안내하는 『데미안』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바로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강압적인 교육에 신음하는 소년을 묘사한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과 방랑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와 만년의 대작인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들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발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은 독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괴테의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1795/96)에서 처음 그 전형이 만들어진 이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소설 형식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기에 헤세는 이렇게 집요하게 내면으로 들어갈 것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혹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헤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정신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인간의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깨웠듯이 "자연과학의 숨결이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이제 ‘만물에 깃든 진리’, 즉 모든 자연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자연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문학, 철학 등 자연과학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인문학에서도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르노 홀츠Arno Holz는 예술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두고 "예술=자연–x"라고 주장했다.

역시 자연주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콘라트 알베르티Konrad Alberti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소설을 지배하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드라마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자인 에밀 졸라Emile Zola가 「실험소설론」이라는 에세이에서 인간 행동과 운명은 물리적ㆍ유전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삶의 물리적ㆍ유전적 조건만 주어진다면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나 사회 정책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의 지식이 3단계에 걸쳐, 즉 "종교의 시대–철학의 시대–과학의 시대"를 거쳐 발전하며, 인간에 대한 연구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론, 즉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귀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학사적 측면에서 실증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럽 문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인간 이해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을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 역시 절대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인간은 다른 자연적 존재들과는 달리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신과 자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가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체계의 중심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진 니체의 문장 "신은 죽었다"로 요약할 수 있는 19세기 중후반의 이러한 상황은, 곧 가치체계 중심의 부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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