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 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내가 뻗게 될 줄도 모르고.

그저 이제는 술을 마시러 갈 때 굽이 높은 신을 신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주거니 받거니 잔을 부딪치는 횟수와 취하는 리듬도 중요하다. 그 누구도 취기에서 낙오되지 않는 술자리를 공유해본 사람만이, 그렇게 같은 흐름으로 함께 취해본 사람만이 술친구라는 지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상대의 만취를 겪은 뒤에도 계속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끔찍한 꼴을 또 볼지언정 다시 잔을 부딪쳐보자는 감정이 비로소 술친구라는 단어를 완성해낸다.

물론 친한 친구 사이에도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듯 손님은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열심히 한다고 잘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 나는 술과 술집을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자꾸만 술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나에게 다시 술잔을 쥐여주는 사람이 바로 술집의 사장님이다!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그럼 다음에 또 그렇게 못 마시잖아."

302호를 다녀온 다음 날이면, 나는 고심하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다.

- 사장님, 저 두 발로 나갔나요?

적어도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두 발로 걷는다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다니….

김태윤 씨는 좋은 술친구라는 사실이다. 함께 마셔주는 사람, 내가 부끄럽지 않게 같이 취해주는 존재. 언제라도 다음 잔을 부딪칠 든든하고 포근한 품을 가진 술친구!

온갖 술집을 전전하는 나지만,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아빠와는 한 번도 살갑게 술잔을 부딪쳐본 적이 없다. 어른이 돼서 함께 술집에 간 적도 없을뿐더러, 아빠와 내가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때의 난, 왜 남자들과는 한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지 못하고 반찬도 다른지, 왜 남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지, 제사를 지내러 갔는데 난 왜 절조차 할 수 없는 건지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때 그곳에선 그런 일들이 자연스러웠으니까.

누군가 밥을 준비하고 차리고 치울 동안, 아빠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니까 정말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경상도란 지역의 장점으로 가득하다. 시원시원하게 터지는 사투리처럼 호쾌하다. 쿨한 것을 넘어 과감한 구석마저 있다.

우리 집이 을지로의 경상도집을 반만 닮았어도 좋았을 텐데. 살아 있는 사람을, 여성을, 가족이란 이름 아래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면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갖지 못한 과거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술 한 잔에 털어버리자고 계속해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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