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정말 멕시코라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라는 인간이 잘못된 동기로 잘못된 장소에 와버린 잘못된 존재인 것만 같았다. - P54

‘멕시코라는 땅에 가보고 싶다‘는 바로 그 의지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답은(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한 대답이었다 치더라도) 아마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P55

굳이 변명을 늘어놓자는 건 아니지만,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반드시 내 인생에 국한된 일은 아니지만 수많은 우연들이 산처럼쌓여 생겨난 것이다. 인생의 어떤 과정을 지나면 우리는 어느정도 산처럼 쌓인 우연성의 패턴을 소화시킬 수 있게 되며, 그패턴 속에 뭔가 개인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약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것을 이유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P56

하지만 우리는 역시 근본적으로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가 그 우연성의 영역을 넘어설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P56

그때 이후로 우리는 배낭 대신 쌤소나이트 여행 가방을 들고, 중형차를 렌트하고, 그럴 듯한 호텔에 숙박하고, 식사를 하고, 짐꾼이나 여종업원에게는 팁을 듬뿍 집어주는 중상류급여행을 하게 되었다.  - P59

여행안내서도 스파르타식 학생 취향의 ‘레쓰고‘  시리즈를 청산해버리고, <<미슐랭>> 같은 좀 더 일반적인 책을 들고 다녔다. 이런 변화를 인생의 대전환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타락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P59

하지만 어쨌든 마흔 고개를 넘어서, 적어도 여행하는 양식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일단 성숙한 어른이 된 셈이었다. - P59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루에 여섯 시간씩이나 전혀 뜻도 모르는 멕시코 노래를 계속 듣고 있자면, 제대로 된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머리가 이상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 P64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그 버스의 카스테레오가 고장 나 있기를 하늘에 빌었다. 부처에게나 성모 마리아에게나 껫살꼬아뜰(Quetzalcóatl 고대 멕시코의 창조와 문명의 신, 옮긴이)에게나, 무엇에게든지 빌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스테레오가 고장 난버스는 한 대도 없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멕시코에서는 기적적인 일이었다. 멕시코에서는 온갖 물건이 늘 고장이 잘 난다.
내가 탄 버스도 진짜 별별 고장이 다 나 있었다. 어떤 버스에서는 냉방 장치가 고장 나 있었다. - P65

제 기능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하는 계기판, 이런 건 고장 정도도 아니다. 진짜 속도계도 연료계도 모두 딱 멎은 채로였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카스테레오만은 잘도 울리고 있었다. - P66

이 기묘한 나라에서는 모든 기계가 다 죽어도, 모든  이념과 혁명이다 죽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카스테레오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 - P66

나는 마음을 비우고 멕시코 노래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 P66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멕시코 버스의 카스테레오만은 절대죽지 않는다고 썼다. 하지만 이것은 말의 뉘앙스 같은 것이지, 멕시코 버스의 카스테레오가 죽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멕시코인 운전기사나 차장이 무엇보다도 멕시코 노래를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 P66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침묵이란 멕시코 노래로 빼곡히 메워져야만 하는 미완성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다.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