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명의 부하와 함께 한나라 땅을 나섰던 반초가 오랑캐들과의 싸움으로 반평생을 보낸 서역 땅은 숙주에서 서쪽으로 수만 리 떨어져 있었다. 서역 땅에 머물고 있던 반초가 말년에 향수를 견디지 못하고 황제에게 바친 상소문에는 "신은 추호도 주천군까지 가기를 바라지 않으며, 원컨대 살아서 옥문관(玉門關)에 이르기만을"이라고 적혀 있다. 그 옥문관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9백 리 지점에 있었다. - P96

이듬해인 명도(明道) 원년(서기 1032년)에서하국왕인 이덕명이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대신해 아들 원호가 서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온화한 성격의 덕명은 재위 기간 중 거란과 송이라는 두 대국 사이에 끼어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며 형세를 살피는 정책을 취한 결과, 당시 한창 성장 과정에 있던 서하를 별다른 대과 없이 다스런 인물이었다. - P104

아들 원호는 부친과는 달리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송이나 거란에 대한 정책을 놓고 걸핏하면 부친과 대립했다. 일찍부터 아버지에게서 병권을 넘겨받아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더구나 수많은 전투에서 속속 승리를 거두며 양주와 감주, 숙주를 평정한 덕분에 이제는 그 어떤 전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원호는 평소 서하인은 고유의 풍속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지론의 소유자로, 송나라 조정이 내려준 비단 용포를 입은 아버지 덕명에게 불가함을 주장했다는 일화도 있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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