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상징 충주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경우에 따라 제각기 다를 것이다. 나이 드신 분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유당 시절에 처음으로 공장다운 공장으로 기공한 충주비료공장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나와 그것부터 생각날 것이고, 물산으로 얘기하자면 충주 사과가 유명하고, 산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하늘재라 부르는 계립령(鷄立嶺)이, 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주호유람선, 관광지로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분은 수안보온천, 역사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분은 중원고구려비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 P301
그러나 목계나루는 충주 답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거리로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정서적으로도 여기서 충주로 들어가야 충주에 온것 같다. 목계나루 강 건너 저편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최대의 조창(漕倉)인 가흥창(可興倉)이 있었다. 여기는 그 옛날에 남한강 물류의 허브였던곳이다. - P302
중원고구려비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로 5세기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2미터, 폭은55센티미터, 두께는 33센티미터이고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었다. 발견 당시 행정구역이 중원군이었기 때문에 ‘중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충주고구려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 P313
중앙탑 중앙탑공원은 근래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지은 이름이고 본래 이곳은 중원군 가금면 탑평리이다. 강변 한쪽 들판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평리 칠층석탑‘이라고 불리며 일찍이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은 통일신라전성기에 세워진 것으로 동시대에 유행한 삼층석탑과는 달리 7층 구조이고 높이도 14.5미터로 가장 높다. - P324
이를테면 선덕여왕이 황룡사구층탑을 세운 것도 신라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신라에 무릎을 꿇어야 할 아홉 나라로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탐라), 5층은 응유, 6층은 말갈, 7층은 단국, 8층은 여적, 9층은 예맥을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또 여주 신륵사 강변 절벽에 높이 세운 다층전탑도 남한강 뱃길의 이정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 P324
이러한 우륵의 전설이 깃든 곳은 제천 의림지의 우륵정, 경북 고령의금곡(琴)을 비롯하여 아주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그가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탄금대이다. 다산 정약용도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우륵이 노닐던 곳으로는 충주의 탄금대와 사휴정(四亭)이 있다고하였다. 그래서 충주를 답사하면 자연히 탄금대를 한번 가보게 된다. - P329
신립은 당시 여진족의 침범을 막아낸용장(勇將)이었다. 그러나 그가조령을 지키지 않고 이곳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전멸한 것은 뼈아픈실책이었다. 1801년 다산 정약용은 유배를 떠나는 길에 탄금대를 지나면서 이렇게 읊었다.(「탄금대를 지나며(過彈琴臺)」) - P334
강복판에 불쑥 탄금대가 튀어나왔네 신립을 일으켜서 얘기나 좀 해봤으면 어찌하여 문을 열고 적을 받아들였는지
江心湧出彈琴臺 欲起申砬與論事 啓門納寇奚笃哉 - P334
그 사람이 그 자리(관직)에 있을 만한 인물이 못 되면, 이는 하늘을 어지럽게 하는 일이 된다. (非其人居其官 是謂亂天事)
석양의 탄금대 아래로는 검붉게 물든 남한강이 그 모든 사연을 담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P338
폐사지에 이는 서정 깊은 산골의 폐사지(廢寺址). 절도 스님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적막한 빈터, 뿌리째 뽑힌 주춧돌이 모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무성히 자란 잡초들이 그 옛날을 덮어버린 폐사지에 가면 사람의 마음이 절로 스산해진다. 단청 화려한 건물에 금색 빛나는 불상을 모셔놓은 절집에서는느낄 수 없는 처연한 정서의 환기가 있고, 고요한 절터에는 사색으로 이끄는 침묵이 있다. - P341
그래서 나는 "마음이 울적하거든 폐사지로 떠나라"고 권했는데 정호승 시인은 "폐사지처럼 산다" 라는 시에서 아예 폐사지에 살듯 하라고 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 P342
불상 좌대에서 사위를 둘러보면 거돈사터는 더없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옛 절집 자리는 하나같이 명당이라는 감탄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명당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방향에 맞추어 석축을 쌓고 높낮이를 감안해 단을 쌓음으로써 얻어낸 것이니 차라리 자연을 경영하는 옛분들의 안목이 그렇게 높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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