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原城, 오늘의 원주) 부곡 옛 고을 서쪽에 깎아 세운 듯한 높은 봉우리 우뚝 솟아 창연히 섰고 벼랑 아래는 물이 깊고 맑아 굽어보면 검푸른데 돌 술통이 부서져 강가에 가로놓였네 <강희맹> - P22
原城部曲古縣西 斷峯峡岘臨蒼然 崖下泓澄瞰黝碧 石槽破碎橫江坝 - P22
수주면에는 아름답고 호젓한 작은 강마을이 점점이 이어진다. 복숭아꽃이 만발하기만 한다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옛날에는 더 그랬는지 마을 이름에 무릉리도 있고 도원리도 있다. 어디엔가 유서 깊은 명소가 있음직한데 무릉리 강변 절벽에 요선정(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우리를 부른다. 무릉이란 이상향의 상징이고 요선이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이니 이름만 보아도 그 풍광이 아름답다는 것을알 수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남한강을 따라가는 나의 영월 답사는 이곳요선정을 첫 기착지로 삼게 된다. - P23
듣건대 주천에 두 누각이 있다던데 몇 번이나 수리하여 아직도 온전한가 높고 높은 석벽은 구름에 닿아 있고 맑고 맑은 강물은 푸르게 이어졌네 산새들은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들꽃과 봄풀은 뜰아래 비치이네 술 지니고 누에 올라 아이 불러 따르게 하고 취하여 난간에 기대어 낮잠을 즐기누나 - P25
聞說雙樓在酒泉 幾經芎理尙能全 峨峨石壁靑雲接 漾漾澄江碧水連 山鳥好禽鳴樹上 野花春草映階前 携登官醞呼兒酌 醉倚欄干白日眠 - P25
이것이 숙종이 지은 「빙허 청허 양루시(淸兩樓詩)」 이다. 숙종은이 시를 직접 써서 당시 원주목사인 심정보(沈輔)에게 내려주며 청허루에 걸게 했다. 이것이 숙종의 어제어필시문(御製御筆) 현판이다. - P25
임금께서 주천에 글 내리신 것을 아직도 말하니 청허루는 이로부터 더 명승이 되었네 누각의 모습은 임금의 글씨와 더불어 빛나고 땅의 기운은 도리어 하늘에 닿았구나 백 리의 농사일은 달라진 것이 없고 봄날의 꽃과 새도 전처럼 여전하구나 이르노니, 지척에 근심이 있음을 분간하여 태수는 쉬면서 술에 취해 잠들지 말지어다 - P28
尙說黃封降酒泉 清虛從此勝名全 樓容重與雲章煥 地氣還應壁宿連 百里桑麻渾不改 一春花鳥摠依前 瞻言咫尺分憂在 太守休爲醉後眠 - P28
농무의 신경림 선생은 남한강의 시인이자 민요기행』의 시인이기도한데, 남한강을 따라 민초들의 서정을 찾아 나섰다가 이 마애불을 보고절로 일어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천진난만함이 낳았을 만한 얘기를시적 상상력에 담아 이렇게 노래했다. 제목은 주천강가의 마애불-주천에서」이다. - P32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밭들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별들은 점잖지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여 앉은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 P33
요선정 절벽 위의 소나무와 주천강 마애불 바로 뒤에는 멋지게 자란 소나무가 마치 정성 들여 가꾼 정원수처럼벼랑 끝을 장식하고 있다. 소나무 너머로 비껴 보이는 주천강은 더더욱 아름답다. 거의 환상적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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