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太古) 시절이라. 아득한 옛날 중국의 임금인 천황씨는 쑥떡으로 왕이 되어 섭제별에서 세상을 일으켰으니 자연스럽게 나라가 태평하였느니라. 또 형제 열두 명이 각각 일만 팔천세를 누렸다." 방자 여쭈오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 되었단 말은 들었으되쑥떡으로 왕이 되었단 말은 금시초문이오." - P36
64 원래는 목덕(木德) 즉 나무의 기운이라고 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이 도령이 춘향에 정신이 팔려 이 구절을 쑥떡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양반에 대한 풍자의 의도도 읽을 수 있다. - P36
"도련님 웬 고함이오. 고함소리에 사또 놀라시어 알아보라 하옵시니 어찌 아뢰리까?"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귀 어두운 병도 있더니마는귀 너무 밝은 것도 보통 일 아니로다. 도련님 크게 놀라,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아 애석하도다. 내가 늙은 지 오래되었구나. 꿈에 주공을 보지 못하다니.‘ 란 구절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렇게 해볼까 하여 흥이 나서 소리가 높았으니 그대로만 여쭈어라." - P40
"정승이야 어찌 바라겠나. 그러나 내 생전에 과거급제는 쉽게할 것이고, 급제만 쉽게 하면 육품 벼슬이야 무난하지 않겠나."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라 정승을 못하오면 장승이라도되지요." - P43
단단히 일러 당부하고 춘향 어미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 어미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갓집을 많이 닮는 탓에 춘향 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 어미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나이 오십 세가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빼어나고 살결이 토실토실하고 윤기가 있어 복이 많은지라. 수줍고 점잖은 모양으로 신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방자 뒤를 따라온다. - P46
봄바람 부는 대나무 운치를 띠었구나 향을 피워 밤에 책을 읽네.
대운춘풍죽(帶韻春風竹)이요 분향야독서(焚香夜讀書)라.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남장(男裝)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에 나갔던 효녀 목란(木蘭)의 절개로다. - P49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지는 햇살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팔을 구부정하게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꼭 잡고, 옷을 공교하게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치마를 벗어라." - P55
춘향이가 이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쫓아 들어 누워저고리를 벗겨 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함께 둘둘 뭉쳐 한편 구석에 던져 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한창 힘을 쓸 제, 삼베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재미있는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새로운 맛이 간간 새로워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희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자연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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