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와 문명이 압축된 땅, 터키를 거닐다 - P8
터키와사랑에 빠진 지 어느 새 30년이 지났다. 대학 동기들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할 때,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유학길에 올랐던1983년의 삐딱한 결정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내 청춘과 인생의 절반을 바친 곳을 이제는 눈감고도 그릴 수 있지만, 여전히 처음 터키 땅을디뎠을 때의 그 낯설고도 가슴 벅찬 기분을 잊을 수 없다. - P8
터키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의 "터키는 살아 있는 인류 문명의 옥외 박물관"이란 표현은 결코 과하지 않다. 터키는 지리적, 역사적, 종교 문화적으로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곳이기에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볼수 있기 때문이다. - P8
세계 문명의 총합이자, 역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터키 박물관을 다니다보면 문화적 소양이 깊어지는것은 물론 어느새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동안 눈에 새기고 가슴에 담아 두었던 박물관들을 함께 거닐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터키가 살아 움직이는 땅,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예술의향기가 가득한 곳, 위대한 인류의 지혜가 담긴 나라로 다가가길 바란다. 2015년 4월이희수 - P11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네 시간을 달리면 엎어놓은 깔때기 같은 기암괴석 수백만 개가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풍광을 마주하게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 절대자의 존재를 깨닫게하는 위대한 자연의 조화 앞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여기가 바로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극찬했던 옛 암굴 도시 카파도키아다. - P282
터키는 나라 전체가 영성靈性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아나톨리아 반도를거쳐 간 수많은 제국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역사와 문화의 자취가 곳곳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에 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잃어버린 인간 존재의 깊은 뿌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영성의 도시를대표하는 곳이 샨르우르파다. 이곳은 기독교의 선지자이자 이슬람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로 유명하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욥과 엘리야 등 성인들이 살았던 곳이어서 성자들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도시 이름에 드물게 ‘성스러운‘이란 뜻의 ‘샨르Sank"란 단어가 붙은 것으로도 이 도시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 P302
그런데 실은 터키 동남부의 도시 이름에 ‘샨르‘가 붙은 것은 이런배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제1차 세계대전당시 프랑스군이 이 도시를 침공했고, 우르파 주민들이 이에 용감히 대항해 승리를 거둔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주민들의 용맹함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샨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수여한 것이다. 역사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전혀 엉뚱한 사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 P302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선지자,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 - P303
재미난 것은 두 종교에서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아브라함을 하느님이 가장 총애하는 뛰어난 선지자로 보는 것은 두 종교가 같은 입장이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하느님이 명하신 제단의 제물은 각각 다르게 여긴다. 기독교에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때 본처 사라와의 사이에서 어렵게 얻은 ‘이삭‘을 제물로 보는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여종 하갈에게서 먼저 얻은 장자 이스마엘‘로 여긴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이삭의 후예가 유대인이 되고, 여기서 예수가 나와 기독교로 이어진다. - P303
하갈에게서 얻은 이스마엘의 후예는아랍인이 되고 여기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완성한다. 여기서부터 적통 시비가 엇갈린다. 기독교에서는 적자상속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아브라함과 이삭의 계보를 따르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장자 승계를 내세우며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계보를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두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공동의 조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의 ‘아브라함‘, ‘이스마엘‘을 이슬람에서는 ‘이브라힘‘, ‘이스마일‘ 이라 부른다. 이렇듯 선지자 아브라함은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유대인, 크리스천, 그리고 무슬림들이 공유하는 정신적·문화적 전통을 시작한 인물이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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