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식문화의 중심에 ‘고기‘가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18세기 농업혁명 이후다. 그 무렵부터 일년 내내 육류를 상시 공급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우리의 예상과달리 육류 소비량보다 생선 소비량이 훨씬 많았다. 실제로 중세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일 년의 절반 정도 기간에 생선을 먹고살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가톨릭 교회가 한 해의 반 가까이 되는기간을 단식일로 지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식사를 하지 않는 날인단식일 기간조차 생선 먹는 일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선 먹기를허용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생선 소비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렇게 단식일이 ‘피시 데이 (Fish Day)‘로 재탄생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가 삼시세끼를 생선으로 해결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것도 일 년의 절반이나 되는 날들에 말이다.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생선 위주 음식문화는 당대 유럽사회를 어떻게 바꾸어놓았을까? - P9

회유어(魚)인 청어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이동 경로를 바꿀 때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경로가 바뀔 때마다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학자들은 바이킹이 고향을 버리고브리튼섬을 침략하게 된 결정적 요인으로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를 꼽는다.
예기치 않은 청어의 이동 경로 변화는 13~17세기 유럽의 세력판도를 뒤흔들어놓았다. - P10

발트해 연안 도시의 상인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1241년의 뤼베크와 함부르크 간 동맹 결성이 시초였는데이는 유명한 한자동맹의 원류가 되었다.  - P10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한자동맹의 경제적 패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 원인은 청어 떼가 갑작스럽게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를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꾼 데에 있었다. 이 작지만큰 변화 하나로 한자동맹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북해 연안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이어받았다. 이로써 그전까지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존재감 없던 나라 네덜란드가 족쇄를 벗어던지고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네덜란드는 이제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해양을 지배하는 헤게모니 국가로 거듭났다. 이 모든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 몸길이 30센티미터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가 있었던 셈이다. - P11

대구를 소금에 절여 햇볕에 바짝 말리면 5년은 거뜬히 보관할수 있다. 이른바 염장 대구는 적도를 지나도 상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귀중한 식량 중 하나였다. 염장 대구는 신대륙을, 혹은 미지의세계를 찾아 떠나는 먼 거리 항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필수품 중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래서였다. - P12

1. 청어의 회유 경로 변화가 유럽의 세력 판도를 바꾸고 여러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다고?

청어는 잡은 뒤 볕에 말리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워낙 기름기가많은 생선이라 금세 상하기 십상인 까닭이다. ‘소금에 절인 청어‘
라는 식품은 이런 이유로 등장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청어를 가공하는 기술에 관한 한 독보적인 나라였으나 그 비법이 잉글랜드에 전해지지는 않고 있었다. - P21

헨리 8세 시대에 이르러 잉글랜드는 단식일에 행해졌던 종교적 강제 조치를 모두 폐지하고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맡겼다. 그로 인해 잉글랜드에서점차 어업이 쇠퇴했고 국방에도 문제가 생겼다. - P23

모든 알이 성체로 자란다면 우리는 발을 적시지 않고도 대구의 등을밟으며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등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요리대사전』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가 만일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청어 산란 장면을 보았다면 아마 위 인용문의 ‘대구‘ 자리에 ‘청어‘를 ‘대서양 자리에 ‘발트해‘나 ‘북해‘를 넣지 않았을까. - P25

<청어와 역사>는 바이킹이 잉글랜드에 정착한 지역에도 주목한다. S. M, 토인은 바이킹은 청어잡이가 활발한 지역 위주로 식민지를 개척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잉글랜드 야머스를 비롯해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가 바이킹의 주요 공략 대상이었다. - P27

바이킹은 해안이 후미져 들어간 만에 주로 살았다.
그들이 터를 잡고 산 땅은 환경이 열악하고 토지가 척박해
농업과 목축에 적합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들의 주요 식량은 농작물이나 육류가 아닌 어류와 해산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청어와 대구가 특히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 P28

한자동맹의 ‘한자(Hanse)‘는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한자동맹은어떻게 탄생했을까? 독일어 한자는 ‘단체‘라는 뜻이다. 중세 전성기에 접어들어 상업이 부활하고 도시가 발달하자 자연스럽게 상인단체가 탄생했다. 아직 치안이 열악한 상황에서 무역을 위한육로와 해로에서의 안전을 확보하고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상인들 간의 자연발생적인 조직으로 한자동맹이 탄생했다. 13세기 무렵의 일이었다. - P32

뤼베크는 어떻게 교역 중심지로 발달할 수 있었을까?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리적 조건‘을 꼽을 수 있다. 
즉 이 도시가 발트해와 북해를 나누는 윌란반도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다는 탁월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2

1. 먼저 바다에서 잡아 항구로 들여온 청어의 내장을 제거한다.
2. 바닷물로 깨끗이 씻어서 소금에 절이고 통에 담아 그 위에 다시 소금을 뿌려 재우고 뚜껑을 덮는다.
3. 열흘가량 숙성시킨 뒤 뚜껑을 열고 청어가 절여져서 부피가 줄어든 만큼 청어를 좀 더 채워 넣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 P37

한자동맹은 코그선으로 소금에 절인 청어를 운송했다. 그들은독일은 물론이고 러시아, 폴란드, 발트해 지역의 나라와 도시들, 플랑드르,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잉글랜드까지 판로를 확장했다. - P41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절정에 도달한 다음에는 내리막길이 기다리는 것이 자연과 우주의 원리다. 오랫동안 한자동맹의부와 권력을 뒷받침해주었던 청어 떼가 회유 경로를 바꾸는 바람에 발트해에서 산란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15세기 중반 유럽국가들이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무역하던 바다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였다. 16세기에 이르러 청어 떼는 완전히 북해로이동했다. - P42

다른 수많은 발전과 마찬가지로 이 발명도 여러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을 것이다. 청어가공업에 종사하며 청어어업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꿰뚫어 보는 안목과 통찰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수많은 창조적인 이들에게 그 공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 P47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 역사를 통해 헤게모니 국가로 거듭난 나라는 네덜란드, 잉글랜드, 미국 세 국가밖에 없다.
특정 중심국가의 생산 효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그 국가의 생산물이 다른 중심국가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에 있는 국가를 ‘헤게모니 국가‘라고 부른다. 월러스틴은 세계시장을 자유로운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그 국가가 가장 큰 이익을 누릴 수 있게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또 그는 한 나라가 헤게모니를 확립해 나가는 유형도 설명한다. - P60

한 나라가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먼저 농업과 공업에서 생산 효율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해야 하고 세계무역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나라들은 두 가지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세계무역의중심‘이라는 핵심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둘째, ‘눈에 보이지않는 상품‘ 즉 운송·통신·보험 등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지배함으로써 막대한 무역 외 이익을 챙길 수 있다. 헤게모니 국가가 확보한 이러한 상업적 패권은 금융 부분에서 더욱 강력한 지배력을확립할 수 있게 해준다. - P60

16세기 말, 청어잡이로 막대한 부를 쌓은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먼저 그들은
유라시아 대륙 북쪽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는 ‘북동 항로‘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봉 항로를 이용해 네덜란드령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 P74

엘리자베스 1세가 이렇게 대답했다.
"바다와 공기는 누구나 함께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다.
이 세상 누구도 바다를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여기서 짐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 혹은 국제적 규약과 관습이
개인의 바다 소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 P77

사략선: 개인이 교전국으로부터 특허장을 얻어 자신의 비용으로 선박을 무장한 뒤 위험을 무릅쓰고 해상 전투에 참전하여 적국의 선박을 포획하고 심판을 거쳐 포획물을 자기 수익으로 삼는 행위를 인정한 것. 근세 초기의 국가는 상비 해군력이 약했으므로 개인 소유의 선박에 교전 자격을 부여하여 전력을 증강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략선은 이익을 중시하는 개인 사업이기 때문에 위험이 적고 수익이 많은 상선 포획에만 혈안이 되고특권을 남용하여 중립국 선박에 대해 전쟁법상 허가된 포획의 한도를 넘는 약탈을 일삼음으로써 교전국과 중립국간 분쟁 원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 P78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윌리엄 세실 경이
정치적 의도에서 국민들에게 피시 데이를 엄격히 지키도록 권장하며
보호무역 중심의 어업 부흥책을 펼쳤다.
세실 경은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인물이었다. - P82

16세기 말, 청어잡이로 막대한 부를 쌓은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먼저 그들은 유라시아대륙 북쪽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는 ‘북동 항로‘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희망봉 항로를 이용해 네덜란드령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 P89

‘세계시장을 좀 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어 많은 국가가 더 큰 이익을 누리게 하고자 한다‘라는 『자유해양론』의 이상이 매력적이다.
이는 세계 체제론을 확립한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평가다. - P90

만약 바다를 제멋대로 사용하기 위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권리를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법외의 지배력을 누리고자 하는 흑심을품고 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만약 타인의 어업을 방해하려는자가 있다면 그는 광기어린 탐욕의 화신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길이없을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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