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백성이 유리하여 육지 고을로 옮겨가 사는 관계로 세 고을의 군액 (庫爾이 감소되자, 비국이 도민 출입을 엄금할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조선의 출륙금지령은 탐라가 축적시켜온 모든 해양력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으며 섬 백성을 옥죄었다. - P345

출륙금지는 억압을 낳고
옥죄면 반드시 튕겨 나가는 반동이 있는 법이다. 출륙금지령은 오히려 더 많은포작인을 육지로 내몰았다. 감옥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도는 무단 탈출이었다. - P346

게다가 ‘제주읍성 산지물을 사흘만 먹으면 모두 한 가지로 탐관이 된다‘는 속언이 있을 정도로 알려진 경래관의 토색질은 조선 팔도 어느 곳보다 극심했다. - P348

서울에서 떨어진 극변인데다가 출륙 금지된 감옥이니 토색질을 하자고 들면 않은뱅이 턱 차기로 쉬웠던 탓이다. 수령의 작폐를 직접 조정에 고변하려 해도 출륙을 금하니 어찌 해볼 도리가 있있다. 제주민에게 200년 세월은 단설과 억압의슬픈 역사였다. - P348

빛나는 단심이 잡초에 묻혔도다
몽골 복속 2년 뒤인 1275년, 원나라에서 도적질한 죄수 1백여 명을 탐라에 귀양보낸다. 몽골은 귀족일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이는 그들의 습속에 따라 종신 유배지로 고려의 섬을 선호했다.  - P348

유배형에는 죄인을 고향에서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천사(遷), 유배인의 정상을 참작하여 유배지 현관(官)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 조치를 맡긴 부처(付處), 그리고 안치(安置)가 있다. 안치는 죄질이 가벼운 사람을 고향에 유배시키는본향안치, 중죄인을 섬에 격리시키는 절도안치, 가시울타리를 치고 죄인을 유폐시키는 연금조치인 위리안치가 있다. - P350

불우한 유배객은 죽어서도 유배당한다
대정향교에 가면 늘 푸른 소나무를 만난다. 대정으로 귀양 온 추사 김정희가 그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릴 적의 모델이었다. 찬바람 이는 제주도 남동쪽 끝자락에 의지하여 의연하게 서 있는 이들 소나무가 추사의 손을 통해 제한도의 소나무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추사적거지가 대정향교와 지척이니 단산의 절경에서 귀양객의 의연한 외로움을 소나무에 실었음 직하다.
1960년대의 사진을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음을 알수 있다.
- P356

제주 유배 당시, 추사는 이미 모든 서체에 통달해 있었으나 대정의적거지에서 비로소 추사체의 완성을 보았다. 박규수는 추사체가 유배지에서 더욱 무르익은 것이라고 했다.
만년에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일이없었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게 되니 신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하며 조수가 밀려오는 듯했다.
- P359

자식조차 버린 유배객의 몰염치
조천포구에는 순조 20년(1820)에 지은 연북정이 한양쪽 바다를 바라본다.
왜 하필 ‘임금 그리워하는 정자일까. 임금을 의무적으로 그리워해야했던 봉건제의 징표이리라. 충군의 교의에 충실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지만 유배객 처지에 진정 마음으로 그리워했을까. 임금을 향해 간절히 돌아갈 그 날, 나아가 해배 이후에 다른 벼슬자리, 아니면 일신의 보신책을 기대한 것이 아닐까.
- P362

자기 자식조차 버리고 떠나면서 천첩 취급했던 유배객의 몰염치를 어떤 미사여구로 가려줄 수 있으랴!
- P365

본토에서 굽어보는 내부 식민지
유배객만 귀양 온 것이 아니었다. 제주도 벼슬살이는 그 자체 또 다른 귀양살이에 간주되었다. 16세기 후반에 권응인이 찬한 송계만록(松)을 보면, 조사수가 제주목사로 나갔을 때 임억령이 지어 보낸 시에서 제주 벼슬길을 귀양살이로 표현하고 있다. 김익수는 친구 이증이 탐라 사절로 가는 길에 벼슬길의 위태함을 위로하면서 다부진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관원으로 오는 것이 귀양과 무엇이 다르랴!
이번 이별이 가장 상심되네. - P365

뭍에서 벼슬하러 내려온 사람과 그 수족 같은 토속관원의 휘두름이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무한 권력을 휘두른 벼슬아치나 천천의 도움을 받으며 잘 살다가내뺀 유배객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본토에서 굽어보는 내부 식민지 ! - P366

삼춘의 섬
이당 저당 렌당이 최고  - P367

시골집의 모양과 규모가 매우 깊고 그윽한데 각 집채가 서로 연속되지 않았다.
- 김정, 제주풍로록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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