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재현함으로써 우마번성을 기원한다. 한라산을 지켜주는 하로산또는 하늘과땅 사이의 기후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수렵 목축의 신이기 때문이다. 하로산또는 사농바치(사냥꾼)를 상징한다. 사농바치라는 한라산신계 수렵목축신은 삼천병마 일만 초깃발‘을 날리며 달리는 장수신으로 표현된다. 궤네깃당 본풀이를 보자. - P249

소천국과 백주또가 결혼해 아이들을 낳은 후, 백주또는 사냥만으로는 살기힘드니 농사를 짓자고 소천국에게 제안한다. 소천국은 국과 밥을 아홉 동이씩가지고 밭에 나가 일하게 되는데 중이 와서 밥을 청하기에 권했더니 모두 먹어 버린다. 그래서 소천국은 밭을 가는 소를 잡아먹는데. 이 때문에 백주또는화가 나 부부가 헤어지게 된다. 그 후 소천국은 예전처럼 사냥해 노루 · 사슴돼지를 잡아먹고 살았다. - P249

소천국과 백주또의 갈등은 미식파와 육식파의 갈등이다. - P249

문화사적 발전과정을 볼 수 있다고 보았다. 미식파와 육식파의 갈등, 대단히 흥미로운 관점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한때 육식파가 이기다가 다시금 미식파에게 열광하는 시대가 아닐까. - P250

제주에 남은 몽골의 흔적 - P250

원 탐라총관부는 사실상 목장 경영을 위한 식민부서였다. - P250

몽골제국의 세계경영 차원에서 본다면 탐라의 훌륭한 초지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다. 맹수 없는 초원인데다가 격리된 섬이라 가축이 도망치지 못하니 이만한 목장터가아시아에 또 있을까. - P250

초원 내부의 역사는 최상의 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던 여러 투르크 몽골 집단들의 역사이자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한 복지에서 다른 목지로끊임없이 옮겨 다닌 그들의 이동의 역사이기도 했다.
-르네 크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 P250

최영 장군이 목호를 토벌할 때,
최후까지 저항한 목호가 3,000여 명에 이르렀음은 순수 몽골인뿐 아니라 몽골의 피를 받은 제주사람도 섞여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목호 토벌은 목축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일시에 사라지는 결과를 빚었다. 제주 말이 왜소해지기 시작한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P251

대몽골제국의 말은 제주도에만 남아 - P252

두 바퀴 마차에 210Kg의 짐을 싣고 4시간에 16km를 걸을 수 있는 괴력을 지녔다. 매일 32㎞씩 22일간연일 행군해도 견딜만큼 굽이 치밀하고 견고하다. 1901년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s. Genthe)는 제주마의 지구력을 높게 평가했다. - P254

열심히 키웠으면 내놓아라
원이 물러가자 마필은 고려에 귀속된다. - P255

되살려야할 검은쉐
제주 신화에서 검은 암쉐생산력과 주술력이 뛰어난 소로 간주된다 - P259

공동체성의 전범인 추렴과 몸국
제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축은 사실 도새기(돼지)다. - P264

환경 리사이클링의 전범인 돗통시
제주도 돼지문화의 으뜸은 역시 돗통시(똥돼지다. 통시(변소)에 보리짚을 깔고돼지가 똥을 누면 그 짚은 썩혀서 화산재 날리는 보리밭에 뿌렸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생성된 변을 돼지가 먹고, 거름으로 변한 보리짚은 보리밭에 뿌리고, 다시금 사람이 그 보리를 먹는 생태순환이 이루어졌다. - P269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으로서 1909년 중국과 한국,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찍이 유기농업을 주목했던 프랭클린 히람 킹(Franklin Hiram King)이 남긴말을 떠올려본다.
동아시아에서 땅은 먹을거리와 연료, 옷감을 생산하는 데 남김없이 쓰인다.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사람과 가축의 입으로 들어간다. 먹거나 입을 수 없는모든 것은 연료로 쓰인다. 사람의 몸과 연료, 옷감에서 나온 배설물과 쓰레기는 모두 땅으로 되돌아간다.
- 4천 년의 농부 - P274

구제역에서 인드라망을 생각하며 - P274

구제역 파동으로 수많은 소와 돼지를 산채로 구덩이에 쓸어 넣는다. 공장식축산이 불러온 문명사적 패배다. 불가의 연기론을 생각하고 인드라망(網)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덩이에 쓸어 넣는 만행에 나서는 중이다. 자연을벗삼아 뛰놀며 마소를 돌보던 옛 테우리를 생각하면서, 21세기형 테우리정신을정립해야할 순간이 아닐까. - P276

표류의 섬
조선시대에 베트남에 간 사연은 - P277

일기 청명하고 서풍이 솔솔 불어오면 순루로 돛을 달아 1일 내에도 가겠삽고, 중류에서 불..
행하여 초풍을 만나오면 안남 · 면턴 표박하여 구미에 가기도 쉽사오며, 만일 다시 불행하면 쪽박 없는 물도 먹고 고기 배에 이사도 하나다.
- 판소리 배비장전 - P277

표류기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실뿐 - P278

험난하기만 한 제주도 물목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배를 댈 만한 곳이 없었으므로 강풍이 불면 표류가 다반사였다. 세계 항해사 측면에서 볼 때 남해안은 좁은 물목에 불과했으나 조금한심한 항해술에 의지해야 했던 당대 사람들은 늘 두려움을 갖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며 항해했다. - P281

당신이 새라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요
표류의 국제성은 서양인 선박의 출현으로 보다 세계화된다. 인조 5년(1627) 9월에 네덜란드 선원 벨테부레(Weltevree, J. J)가 제주에 상륙했다. - P300

1688년 7월에 네덜란드로 귀환함으로써 13년간의 억류생활을 끝낸다. 하멜이제주 해안에 당도하여 심문을 받았을 때, 본국으로 보내달라는 표류민의 탄원을듣고서 박연의 통역을 통해 우리의 고관이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거요. 그러나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않소. 그 대신 당신들을 보살펴 주고 식량과 의복도 지급해 줄 것이니, 이 나라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할거요.
- P300

신들의 섬
에게해에는 올림포스
제주도에는 본향당 - P305

이제 들으니 후임자가 도임한 다음날 크게 굿을 했다. 또 무당들이 빨리 신당을 복구하도록 하고 의생을 파했다. 백성들이 낙담하여 등소장으로 정지할 것을 청했으나,
오히려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또 무녀안을 만들어 전과 같이 편모를 거두고, 무당들은 재력을 내어 이미 폐했던 신당을 세웠다고 한다. 가히 한심스럽다.
이형상, 《남환박물》

굿당이되 굿당이 아니고, 절이 있되 절 아니다 - P306

풍속은 음사를 숭상하여 산과 숲, 내와 못, 높은 언덕이나 낮은 언덕, 물가와평지,나무와 돌 따위를 모두 신으로 섬겨 제사를 베푼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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