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에도 없고 지도는커녕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갤러리를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돌담 늘어선 마을을 몇 바퀴째 돌다가 렌터카 백미러에 문득 손바닥만 한 문패가 들어왔다. ‘김영갑 갤러리‘ 라고 쓰여 있었다.
- P241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이름표만 걸었지요. 용케도 찾아오셨네요. 제주 토박이도 한참을 헤매는데." 갤러리 입구에 놓아둔 나무의자에서 그는나를 맞았다. 각오했던 것보다 병색이 짙었다. - P241

그는 말을 할 때마다 오른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입을 움직이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말을 하면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듣기 어려웠지만 다 알아들은 것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찾아갔을 때 김영갑은 오래전에 시한부 판정을받은 뒤였다. 모든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치유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준비하던 때였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우리에게는 루게릭병으로 더 알려진불치병이다. 10만 명 중 한두 명이 걸리고, 발병하면 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병이다. 병인을 알 수 없어 치료약도 없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온몸의 근육을 지켜보며 죽어가는 저주 같은 병이다. 지독하고 잔인한 형벌이다. - P241

김영갑은 1957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육남매 중 막내였다. 월남 갔다 온 형님이 갖고 온 카메라를 갖고 놀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의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진을 찍겠다고 혼자 돌아다녔다. 제주와 처음 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었고, 제주에 정착한 것은 1985년이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건 1990년대 중반이었고, 확정 판정을 받은 건 1999년 이었다. 2002년 삼달리의 폐교를 빌렸고, 2003년 6월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열었다. - P241

"만일 처음부터 (갤러리) 완성을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만, 한 주만, 한 달만, 내 힘이 닿는 데까지만 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온몸의 기력이 소진해 카메라를 들기는커녕 손가락 힘이 없어 셔터조차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앞뒤로 움직일 수도 없다. 잔인한 통증 때문이다. 죽을 넘기기에도 힘에 부친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하루는 너무 더디 간다."
- P243

형님이 부탁한 에어컨은 비쌌다. 갤러리를 다 감당하려면 에어컨이 커야 했다. 나는 권혁재 선배와 상의했고 각자 돈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권선배가 그 큰돈을 혼자 부쳤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선배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 P243

"비단 치마에 몸을 감싼 여인처럼 우아한 몸맵시가 가을 하늘에 말쑥하다.
빼어난 균제미에 있어서는 구좌읍 일대에서 단연 여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 P255

"사진은 그림과 같습니다. 화가가 캔버스에 자신이 받은 인상을 옮기듯이, 사진작가도 자신의 느낌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물론 작업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화가는 캔버스에서 햇살과 바람을 마음껏 만들어내지만 사진은 그렇게 못하지요. 그래서 저는 기다립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내가 상상하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구름을 기다리고 햇볕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립니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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