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취 있는 호젓한 길이 장차 휴양림으로 개발되는 날, 넓혀지고 계단이 놓이고 지나치게 손질이 가해져서 멋대가리 없는 신작로로 변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걱정이 태산이다. 숲을 걱정하는 진심이 뚝뚝 묻어난다. 이 근심과 염려의 대상이 절물오름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절물오름은 있고 절물자연휴양림은 없던 시절, 스스로 오름 나그네라 불렀던 제주 사내는 절물오름을 에운 숲에 휴양림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영 마뜩잖았다. 김종철 선생이 돌아간이태 뒤 절물자연휴양림이 개장했다. 다행히도 선생의 걱정과 달리 절물오름 오르는 길은 여전히 호젓하다. - P154

탐방로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 "반기문 산책로‘다. 원래는 생이 소리길이었는데 이름이 바뀌었다(생이‘는 제주어로 새란 뜻이다). 충청북도 음성 출신인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절물과 무슨 인연이 있었나 알아봤더니, 2009년 휴양림을 찾은 당시 반 총장이 생이 소리길을 걷고서 "다 좋은데 길이 네무 짧다"고 한마디 했단다. 이후 777미터였던 생이소리길은 3.6킬로미터로 들어났고, 길에 유엔 사무총장 이름을 붙였단다. 음……. 큰일 하셨다. - P155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삼나무 잎은 끝이 뾰족하고 편백나무 잎은 끝이 뭉툭하다. - P156

민달팽이도 있었다. 지렁이인 줄 알았는데 대가리에 두 갈래로 나온 촉수가 있었다. 오래전 읽은 시구가 생각났다. 어느 시인이 맨몸의 민달팽이가안쓰러워 배추 잎사귀를 덮어줬다. 민달팽이가 잠시 멈칫거리는 듯싶더니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리더란다. 인간의 호의를 뿌리치는 민달팽이를 보고 시인은 놀랐다. 그리고 "치워라, 그늘!" 이라고 소리치는 시를 썼다(김신용, 「민달팽이」 부분), 등에 집을 짊어진 삶은 버거워도 아늑하고, 맨살로 세상과 부딪히는 삶은 위험하나 자유롭다. 치워라, 그늘! 나도 젊은 날에는 이 호기로운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 P158

곶자왈은, 말하자면 제주 천연림이다. 흔히 숨을 뜻하는 제주어 ‘곶(고지)‘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어 ‘자왈‘ 이 합쳐진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곶자왈은 제주 고유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도 "곶자왈이 뭐과?" 하고 되묻는 형편이다. 곶자왈은 신조어다. 제주방언을 최초로 연구한 석주명 1908~1950년 전생의 『제주도방언집에도 곶자왈이라는 낱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곳은 숲보다 산으로, 자활은자갈이 아니라 숲으로 더 많이 쓰였다. 제주도청이 1995년 발간한 『제주어사전」도 곳을 ‘한라산 아래 펼쳐진 숲‘으로, 자왈을 ‘나무와 넝쿨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곳 이라고 정의한다. - P168

곶자왈은 의외로 1990년대 이후 화산지형을 연구한 지질학에서 출발했다. 지질학에서는 곶자왈을 ‘중산간지대에 있는 투수성이 좋은 용암류지대‘ 라고 이른다. 이와 같은 지질학의 개념이 ‘용암 암괴 위에 있는 숲이나 덤불‘ 이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쉽게 풀이하면 곶자왈은 화산암이 깔린 숲이다. 딱딱한 용암지대 위에 오랜 세월 흙이 쌓이고 그 흙에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룬 지형이다. 제주 특유의 화산용암 식생지대라 정의할 수있겠다. 자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갈을 뜻하는 제주 방언은 자왈이 아니라 작지다. 저지리의 작지곶자왈은 자갈이 많은 곶자왈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작지곶자왈에는 유난히 작은 자갈이 많았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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