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오름은 어리목 코스와 영실 코스가 만나는 교차점이자 두 코스의 종점이다. 윗세오름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붉은오름(1,740미터), 누운오름(1,711미터), 족은오름(1,698미터) 세 오름이 윗세오름을 이룬다.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어서 윗세오름이다. 한라산 동쪽 자락 해발고도 1,100미터 지점의 삼형제오름이 기준이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까지는 4.7킬로미터 거리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어승생악과 달리 윗세오름은 한라산 안에서도한라산에 속한다. - P30

요즘에는 오름에도 산이 많다. 산방산, 영주산, 단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등등 산이라 불리는 오름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애초부터 산이었던 오름은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산으로 개정된 오름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단산은 바굼지오름, 송악산은 절울이오름, 수월봉은 노꼬물오름이었다. - P42

실제로 산방산은 신의 영역이었다. 소 풀고 촐 비러(꼴 베러) 다니던 생활의 영역이 아니었다.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신성한 공간이었다. 오름을 신격화하는 여러 설화가 산방산에서 다 모인다. 군산과 고근산처럼 산방산도 금장지葬地다. 묘를 쓰면 화를 입는 땅이라는 뜻이다 - P43

굴사는 고려 말 혜일선사가 창건했고, 조선 후기에는 초의선사 1786~1866년가 굴사에서 수도했다. 초의선사는 귀양살이 중이던 벗 추사 김정희1786~1856년 만나러 제주까지 내려와 여섯 달을 머물렀다. 천장 바위틈에서 똑똑 약수가 떨어지는데, 이 약수에 여신 산방덕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 P45

산방산 동굴에 살던 여신 산방덕은 마을청년 고성목의 품성에 반해 신의 지위를 버리고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여신을 탐낸 사또가 고성목에게 누명을씌워 죽인다. 남편을 잃은 산방덕은 동굴로 돌아와 바위로 변했고, 그때부터 바위에서는 물이 떨어졌다. 산방굴사 약수를 ‘산방덕이의 눈물‘이라 이르는 연유다. 약수 한 국자 떠 마시면 5년을 더 산다는데, 약수 핑계로 날마다 산방산을 오르면 5년은 더 살 것 같기도 하다. - P45

침식작용과 무관하다. 인간이 고의로 무너뜨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은 대구에 있던 제1훈련소를 모슬포로 이전했다. 1951년부터 1956년까지 모슬포 일대는 최대 7만 명이 주둔하는 군부대였다. 그 시절 산방산은 대포사격 표적지로 전락했다. 육군은 주변에 마땅한 표적이 없다는 이유로산방산을 향해 대포를 쐈다.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당시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방산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다. - P45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고,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 P47

켈파르트Quelpart. 하멜은 제주도를 켈파르트라고 불렀다. 어디엔가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유럽에는제주도를 켈파르트라고 표기한 지도가 있단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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