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은 미국이 자랑하는 발명품이다. 1872년 미국 연방정부가 옐로스톤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미국 최초, 아니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윌리스 스테그너 1909~1993년가 두고두고 인용되는 문장을 남겼다. "국립공원은 미국이 만들어낸 최고의 아이디어다." 국립공원은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에 관한 최초의 고민이자 최선의 타협이다. - P22

미국은 지금도 국립공원에 불이 나도 일부러 끄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스스로 꺼질 때까지 내버려둔다. 타다 만 나무를 장작으로 쓰지도 않는다. 심지어 곰 몇 마리가 국립공원에 사는지도 파악하지 않는다. 300~500마리로 추산하는 정도다. 인위적으로 번식을 시키거나 보호구역을 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곰이 사람을 덮쳐도 일차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곰의 영역을 침범한 건 인간이어서다. 곰은 그래도 종종 시고를 일으켜 대충이라도 개체 수를 확인하고 있다. 사슴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안 쓴다. 그게 자연이어서다. 인간이 간섭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만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립공원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 스스로 내건 최후의 선언이다. - P22

그렇다면 휠체어 장애인만 탈 수 있는 케이블카를 놓자. 그럼 나도 기꺼이 당신들 편에 서겠다. 장애인을 비롯한 노약자만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는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겠다. - P22

아시다시피 한라산(1,950미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한라산이라는 이름도 유례없는 높이에서 유래했다. 한라산은 은하수를 끌어당기는 산이라는 뜻이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에는 하늘과 맞닿은 거룩한 존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아시는지.
두 산 모두 여신이 주인이다.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이, 지리산은 천왕성모가 지켜준다.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한라산에는 할머니가 계신데, 지리산에는 어머니가 있다. 우스개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할머니는 생명의 근본을 상징하고, 어머니는 생활의 터전을 의미한다. 한라산과 지리산(1,915미터)이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두 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 P22

한라산을 유랑한 기록이 많지 않은 것도 물리적 거리에 더해진 심리적 거리 때문이다. 바다 건너 제주에 들어야 하고, 제주에 들어서도 이 험한 산을 올라야 하니 여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엄두도 못 냈으리라.
그렇다 보니 한라산은 자꾸 멀어지고 자꾸 높아져 은하수와 닿는 데까지 올라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거리 덕분에 제주도는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다. 거리 두기의 역설이다. - P22

2017년 제주는 30년 만에 만세동산(1,608미터)에 말을 풀어놓았다. 6월부터 9월까지 300킬로그램 무게의 말 열 마리가 만세동산에서 조릿대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말 무게가 300킬로그램이라는 것은 말 한 마리가 하루에 조릿대 18킬로그램을 먹어치운다는 뜻이다. 말은 보통 하루에 제 무게의 6퍼센트에 해당하는 먹이를 먹는다. 언뜻 만화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장 생태친화적인 방법이다. 만세동산에 말을 풀어놓던 시절에는 조릿대가 오늘처럼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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