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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평점 :
나는 불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때 불자인 척 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 불교를 믿으셨던 할머니를 따라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절에 가곤 했었다. 절이 바로 동네 뒷산에 있었기 때문에 절에 큰 행사가 있지 않을 때도 종종 친구들과 놀러가곤 했었다. 동네가 외진 시골이었기에 특별히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없었고, 어른들은 모두 농사일에 바쁘셨다. 그때 우리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때로는 맛있는 간식도 얻어 먹을 수 있는 곳! 바로 절이었다. 덕분에 절은 당시 어린 나의 놀이터였다. 아!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스님의 일손을 거들기도 했었다. ^^;;
벌써 20여년 전의 일인지라 그때 절에 머무르셨던 스님의 성함도, 스님의 얼굴도 기억이 흐릿하다. 그럼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래서 그런지 현재는 불자가 아님에도 '절'이라는 공간을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낌다. 그때의 산세와 그때의 평화로움이 자동적으로 생각나기 때문이다.
2년 전 쯤에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을 때, 친구가 바람을 좀 쐬러 가자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절에 가볼래?" 했었다. 특정 절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절'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럼 좀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정상 멀리 가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근처의 작은 절에 가서 기웃(?)거리고 왔었는데 생각했었던 모습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생각하고 갔었는데 절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좀 부산했던 것 같다 - 아니었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 졌었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 '절'이라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읽어보고 싶었다. 가끔 TV에서 절에 대해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보가 많지 않았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았고..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이렇게 절에 관한 정보가 담겨있는 책을 보고 싶었다.
책은 저자분께서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의 여러 절을 직접 답사를 하신 후에 쓰신 책이다. 절에 관련된 이야기나 발걸음을 옮기면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 그리고 절에 관한 정보-가는 길이 짧게나마 적혀 있다 - 들. 예상보다 더 기분을 좋게 하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다루고 있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산 속에 위치하여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절들과 그에 속해 있는 탑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산중불교'라는 말-원래는 그렇지 않았다가 조선 이후 불교 억압정책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절'이라고 하면 고요한 산 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우리 동네에만 해도 도로변에 절이 두 곳이나 자리잡고 있는데 몇 년째 봐도 어색한 모습이다. 이건 단지 내 편견일 수도 있는데 과연 차들이 쌩쌩 달리는 시끌벅잡한 곳에 위치한 절에서 '수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물론 수행이라는 것이 마음의 문제이니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제 겨우 이 책을 딱 한 번 읽었다. 그래 그런지 그냥 좋았다라는 느낌이 대부분이다. 한 번 읽고 고이 간직해야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두고 두고 읽는 편이 이 책에게도, 내게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