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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에 부담 없는 무게.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페이지의 느낌이 좋았다. 조금은 냉소적이고, 조금은 불행한 삶을 사는 여자. 돈 때문에 직장 상사에게 몸이 매여있지만 결코 비굴하게 굴지는 않는 여자.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도 삶이 별 거 아니라 말하는 여자. 그 느낌이 좋아서 책을 놓지 않고 계속 읽었다.
여자가 어느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사랑을 입으로 뱉어버리는 순간 남자가 떠나버렸다. 그리고 끝.
순간 "어라?" 싶어서 표지를 다시 보았다. 분명히 '소설'이라고 쓰여 있는데. 장편이 아니었던가. 그렇담 차라리 '소설집'이라고 써주지. 약간의 흘림을 한 후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왠지 도중에 멈춰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사람은 나 같아서.
적지 않은 페이지 속에 때로는 아주 짧고, 때로는 조금 짧은 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왠지 이 짧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통해 하고픈 말을 건네고자하는 작가분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주 짧은 것 중엔 한 페이지를 넘겨버리면 끝나는, 그래서 짧은 꽁트 한 편을 보는 듯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짧은 글 속에서도 '무언가'는 있었다.
무려 13가지나 되는 이야기들 중에는 그냥 한 번 읽고 지나갈 만한 내용도 있었고, 읽으면서 집중하게 되는 내용도 있었다.
아주 짧은 내용은 자칫 그 내용을 다 말해버릴수가 있어서 조금 짧은 내용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을 몇 편 말하자면 '여행'과 '밀회', '퀴즈쇼'가 있었다.
두 번째편인 '여행'. 아주 평범한 그럼에도 사랑 앞에서 조금 많이 찌질한 남자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이미 새로운 애인이 있음에도 전 애인의 결혼 얘기에 이상하게 그 여자에게 집착해 버리는 남자. 그리고 처참한 말로. 충분히 여자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참 못난 사내의 이야기였다.
네 번째편인 '밀회'. 흔히 말하는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니 죽음이던가.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것이 좀 특이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평범한 불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무언가'를 지닌 것이었기에 인상 깊었다.
열 한번째편인 '퀴즈쇼'. 어찌보면 이 책의 제목과 가장 부합되는 내용이 아닌가 싶었다.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여자. 그 여자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사람들. 그 말 많은 사람들 중에 그녀와 이래저래 말을 나눴던 사람들은 없었다. 그저 곁에서 살짝 지켜보고, 나름 생각하고, 그 생각에 말을 보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말로 인해 여자는 더욱더 상처받고 쉽사리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보았다. 읽기 전에는 살짝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 좋아보이던 표지가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무심히 지나가는 차들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마치 자동차의 외형처럼 무쇠로 무장하고 앞을 향해 전진하며 다른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과 그 속에서 외롭게, 그러나 그 외로움을 보란듯이 드러내지는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은 것 같았다.
작가 김영하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이 한 편을 갖고 뭐라 말 할 수는 없지만 이 한 편의 책이 정말 인상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때문에 다음 번이 기대된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