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달콤한 나의 도시'가 떠오른다. 더불어 최강희와 지현우가. 그렇지만 책도 드라마도 보지 못한 내게 정이현이라는 이름은 조금은 낯설었었다. 그러다 얼마전에 읽은 '너는 모른다'를 통해 기억되는 작가가 되었다. 또한 이렇게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까지 되었다. 왠지 사랑스런 이야기가 담겨져있을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제목과는 좀 대비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악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총 8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때로는 평범하게, 때로는 악하게, 때로는 너무나도 약한 여자들이었다. 푹푹 삶아 물빠진 누런 팬티를 입고 다니며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 팬티를 지키고자 하는 여자, 어느 날 자신의 차 트렁크에 보란듯이 숨진채 누워있는 직장 동료로 인해 인생이 틀어져버리는 여자, 아버지의 애인을 위해 스스로 납치극을 벌이는 소녀, 세번째 남편까지 목숨을 잃게 되었지만 경제적으론 보다 풍족해진 여자의 이야기등 상황도 참 다양하고, 성격 또한 참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야기 한편 한편은 참 강했다. 뭐 이런 상황이 다있나 싶을 정도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도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특히나 불륜같은..)소재 속에서 자신의 평범함을 지키려 노력하는 여자도 있었고.. 내용 하나하나를 보면 특이하다 못해 충격적인데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의 말투는 차가움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냉소적인 말투. 그 차가움 때문에 보는 내내 씁쓸함을 느꼈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 차가움. 여자라는 입장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혹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그렇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 현실에선 우리가 쉽사리 외면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책은 내게 '너는 모른다'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었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이현 작가 특유의 날카로움과 차가움 때문이랄까. 왠지 모르게 두 권의 책에서 정이현 작가의 특별함이 느껴졌다. 가장 많이 알려져있는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아직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다른 책들은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분의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