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다큐에서 일본의 차 문화를 다루는 것을 보았다. 별다른 지식없는 내가 보기엔 그저 허름해 보이는 찻잔을 보물 다루듯이 소중하게 다루던 일본의 어느 주지스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도는 그저 차 맛이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 다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다도를 잘 모르던 어리석은 내가 다도를 아끼고 소중히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어리석다 비웃었던 것이다. 제140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다도의 정석이라 불리며, 다도를 통해 ‘일본적 미학’의 틀을 세운 센 리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정확히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 아직까지도 의문투성인 그의 죽음과 관련된 발자취라고 할까.. 센 리큐는 어물상의 하시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반항기 가득했던 젊은 시절엔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은 천부적이었기에 성장하면서 인정을 받는 인물로 자라났다. 특히 다도에 대해서는 탁월했었다. 어느새 다도의 일인자가 되어 당시 천하를 통치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정치를 논하기까지하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천부적인 심미안을 지닌 리큐와 천부적으로 남의 재능을 질투했던 히데요시는 여러 번 충돌하게 되고, 결과는 리큐를 점점 벼랑끝으로 몰고 간다. 일본이란 나라를 흔히 말하길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이 서로를 훤히 알것도 같으면서 여차하면 서로를 놀래킬 수 있을 정도로 속을 모르겠는 나라.. 그래 그런지 그 오랜 시간동안 단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만은 아닌 여러 이유로 얽혀있는 다소 복잡함을 느끼게 하는 나라. 그랬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복잡한 감정보다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졌다. 나라와 나라를 떠나서 단지 사람.. 그리고 또 사람이 느껴지는.. 그런면에서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속에 멤돌던 책이 있다. 읽은지 오래되어 그 내용조차 희미지만 그 느낌만큼은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있는 책, 오토카와 유자부로의 '살다'라는 책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오키상을 받은 책이었는데 역시 무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모시던 주인이 죽게되면 따라 죽는 것이 무사의 당연된 논리였던 시절, 주인공은 중신의 은밀한 명으로 주인이 죽은 후에도 죽음을 거부하고 살아 남게 된다. 그러면서 그에겐 온갖 시련이 닥친다. 말그대로 사는게 사는게 아닌 삶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다도를 위해 허리를 굽히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내, 당연시 여겼던 죽음을 거부하고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사내.. 전혀 다른 듯한 두 사내의 이야기에서 왠지 모를 공통점이 느껴졌던 것이다. '리큐에게 물어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고 극적인 내용은 없었다. 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에 대한 강한 집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풀어놓은 듯 했다. 그 담담함이 글자를 통해 전해지고, 시나브로 마음을 적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