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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반양장)
글로리아 J. 에반즈 글.그림 / 규장(규장문화사) / 1987년 8월
평점 :
절판
담, 나와 당신을 위한 이야기. 라는 제목에 끌려서 보게 되었다.
책도 얇고, 휘리릭 넘겨보니 그림과 글이 거의 같은 비중인지라 부담 없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스스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튼튼한 돌을 이용해 '담'을 쌓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언제부터 쌓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무슨 이유로 쌓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담을 열심히 쌓아가는 여자. 사람들은 그녀가 쌓아놓은 담에 손을 걸쳐 쉬기도 하고, 그런 그녀를 비웃기도 한다. 하여 여자는 돌 위에 삐족한 돌을 놓기 시작한다. 그 삐족함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더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의 노력으로 담은 세상과 그녀를 갈라 놓았다. 처음엔 담으로 인해 편안함을 얻었던 그녀지만 곧이어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그녀가 쌓아놓은 담을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담이 너무 높아 이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으로 인해 후회를 하며 슬퍼 하는 그녀에게 어느 날 꽃 한송이가 담을 넘어온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누군가가 그녀의 곁에 있어 주고 있었고, 그녀를 응원해 담을 허물기 시작한다.
여자에게 있어 담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장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담을 높이 쌓았고, 때로는 삐족한 장애물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결국엔 아무도 그녀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편안함이 아닌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라는 생각은 그녀에게 또 다른 담을 마음속에 순식간에 쌓아 놓은 것이다.
혼자서 외로움으로 인해 상처 받고 있을 때, 그녀는 담을 허물고자 한다. 하지만 혼자라는 생각과 자신이 그동안 정성들여 쌓아놓은 담을 허물어야한다는 불안이 그녀를 막아서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드디어 담을 허물기 시작하고서야 그녀는 자신이 쌓아놓은 담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노, 교만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그대로 굳어져서 무엇보다 단단한 돌이 되었고, 그 돌이 쌓여만 갔던 것이다.
그녀는 어두웠던 자신의 세계에 빛이 들기 시작하고, 그 빛으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과 같이 돌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단순히 쉬어가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보다 보니까 책 속 여자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나 혼자만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거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너무 깊이 관여하려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은 생각하지 않고 바로 한 걸음 물러나버리는 부분 등에서.
그래서 절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돌려서 표현하고는 있지만 왠지 적나라하게 비난 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지만 단순히 비난으로만 마무리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책 속의 여자를, 그리고 책의 밖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는 듯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보다 보니까 종교적인 느낌이 조금 드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강하지 않아서 특정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특정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물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