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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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 여옥의 노래 

 제목에서, 흔히 연상되는 어느 옛날 이야기 같은 것에서, 출판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도 사랑이야기를 짐작했었다. 
눈 앞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님을 보면서도, 그를 향해 안타까운 노래를 부르면서도 결국엔 말리지 못하고 눈 앞에서 님을 잃어야만 했던 어느 여인의 삶과 같은 이야기가.

 사람, 또 사람,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공무도하 속에는 어느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래서 늘어놓고 있는 이야기 또한 그 중요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강하다. 그리고  아프다.

 문정수.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 삶에 충실히 살아가지만 그 또한 인간이기에 기사에 앞서 기사 속 인간을 먼저 보려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기사는 늘 허탕이다. 
그의 상사는 늘 그와의 통화 끝에 "니미.. "라는 말을 한다. 문정수를 향하는 것인지, 그가 놓쳐버린 기사거리를 향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런 세상" 자체에 하는 것인지 모를..
노목희.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문정수와는 연인 사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 
여자와 남자사이, 이성간의 몸과 마음을 주고 받는 연인이라기 보다는 문정수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이다. 
장철수.  부조리한 세상에 저항하다 금새 꺾여버린 사람. 살던 곳을 등떠밀려 떠난 후 아쌀하게 낯선 곳으로 이주하여 또 다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보다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더 챙겨주려 하는 사람이다. 
박옥출.  불 속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소방대원이었으나 어느 백화점 화재 현장에서 사람이 아닌 귀금속을 구한 후 건강상 이유로 퇴직을 하게 된 사람.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가는 와중에 역시나 낯선 곳으로 떠나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오금자. 자식을 버리고 홀로 살아가는 못된 여자에서 그 아이가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물려 죽음으로써 불쌍한 여자로 전락해버린 여자. 말없이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살아간다. 
방천석. 열일곱, 꽃 다운 나이의 딸을 어이없는 사고로 잃고 그 아픔조차 남에 의해 표현되어야 했던 사람. 딸 아이의 비석을 남겨두고 그는 말 없이 자신이 살던 곳을 등진다. 

 고향이라는 이름의 땅, 창야 그리고 해망. 

나고 자라 마지막에 눕고 싶은 그 곳 고향. 
창야는 노목희와 장철수의 고향이면서 인연을 얕게나마 갖게 된 곳이다. 
그리고 해망.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어느 덧 이야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뱀섬이라 불리면서 미군에게 인근 해안을 공습 훈련으로 내주었던 곳. 
그리하여 해안 마을의 소들이 대가리가 둘 달린 송아지를 낳았고 닭들의 털이 빠지고 산란율이 떨어지게 된 곳. 더불어 이혼과 자살이 늘어 그야말로 몹쓸 곳이 되어 버린 땅. 
정부의 합동 조사단이 결성되어 6개월간 온갖 조사를 하였으나 결국엔 뚜렷한 원인 규명도, 뚜렷한 보상 처분도 이뤄지지 못하고 허망한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사는 땅. 
주민들의 계속된 항의로 인근 수역의 공여 기간이 예정되었던 10년보다는 조금 일찍 끝이 났다. 그리하여 한숨을 좀 돌릴까 싶었더니 곧이어 시작된 해망 갯벌의 공유수면 매립 공사. 
사람들은 또 다시 휘둘림을 당하고,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간다. 

 사람 사는 그곳에 사건이 없으랴만.. 
 
 책 속에는 쉴틈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시작부터가 사건이었고,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도 사건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벌어지는 사건 하나 하나가 현실에도 있어 왔던 것이고, 그래서 소설 책을 보는 것 같지가 않았다. 
홍수로 인한 피해와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 의붓 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살해하는 이십대 청년, 공장 옥상에서 농성하다 추락사한 노동자, 버려진 비닐 하우스에서 외롭게 살며 가족이요, 친구처럼 여겼던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 크레인 무한궤도에 깔려 즉사 한 열 일곱살의 소녀까지.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중에 전혀 낯설다 싶은 사건은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아주 다른 시선 두 가지. 
늘 그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할 수 있는 어느 형사는 기자에게 말한다. 
"조용해, 절도, 폭행, 음주난동 뿐이야. 늘 하던 지랄이야.. 아주 조용해.. 적막강산이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중 하나라도 겪게 되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란할 정도의 일이지만 그러한 사건들이 일상이 사람들에게는 그저 조용한 일상일 뿐 이었다.
 
그리고 기자 문정수. 그는 모든 사건을 파헤쳐서 대중에게 알 권리를 내세워 그들의 치부까지 드러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대중 앞에 내어 놓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새벽녁에 찾아간 노목희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기삿거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그게 뭐 중요하냐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막막하고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노목희가 말한다.   
"그래도 기사는 쓰지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 만할 거야. " 
문정수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자 하는 노목희의 말에 나까지 위로를 받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보고자 맘 먹게 된 책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김훈님의 대표작인 "칼의 노래"를 보다가 도중에 접었던 기억이 있어서 약간은 두려움을 갖고 보게 된 책이었다.
 어려워서 글이 읽히지 않는 책이 있고, 어렵지만 글이 잘 읽히는 책이 있다. 
"칼의 노래"는 어려워서 글이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면 "공무도하"는 어렵지만 글이 잘 읽히는 책이었다. 솔직히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고비고비 잘 넘겼고, 다 읽고보니 
묵직함이 느껴지면서 흐뭇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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