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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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서점에 가서 이리저리 신간들을 보던 중에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해자의 엄마라는 단어에서 "학교폭력"이란 단어가 연상되었고,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준 아이의 엄마가 자신과 아이를 변호하기 위해 쓴 책인가 싶어서 절로 이마에 내천자가 생겼었다는..

그자리에 서서 책을 몇 장 넘겨보는데 음...가해자가 저지른 죄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학교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켰고, 무려 13명이나 죽었다. 그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의 엄마가

무슨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이런 책을 쓸 자격이 있을까..자격을 논하는게 이상하지만;;

손으로는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머리속에선 온통 이 생각이 들어서 결국 몇장 넘기다가 서점을 나왔었다. 내가 그 사건의 피해자는 아니지만, 뭔가...가해자 엄마의 이야기를 보고 싶지가 않아서..피해를 당한 유족들의 입장에서 이 엄마의 이야기를 똑바로 보고, 들을 수가 있을까...대체 무슨 마음일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정확히는 가해자의 가족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은 안계셨지만 형과 함께 어렵지만 열심히 삶을 살고 있던 다케시마 나오키. 형 츠요시는 어머님의 유언과 같은 말,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 말.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동생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살아왔다. 그러나 학업도, 빽도, 아무것도 없는 츠요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몸을 쓰는 일이었다. 그러다 몸이 망가졌다.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들어지고, 동생의 대학진학에도 문제가 된 것.

츠요시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다. 나오키를 위해 강도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할머니를 살해한다. 우발적인 살인이었으나 이로 인해 츠요시도, 나오키도 삶이

 통째로 흔들리게 된다.

츠요시는 사건 이후 바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형과 함께 살아가던 어린 나오키는 홀로 남았다. 살인을 저지른 자의 동생이란 그림자가 짙게 뭍은 채로.

형의 사건 이후 홀로 남은 나오키의 삶은 그 이전과는 모든게 달라졌다. 대학 진학을 꿈꾸던 소년은 당장 고등학교 졸업이 고비가 되었고, 친했던 친구들은 그와 거리가 생겼다. 아무도 그를 차별하거나 괴롭히지 않았지만 그를 대하는 공기가 달라졌다. 친구들이 그를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일 뿐이던 친구들에게 나오키의 존재는 불편함이었다. 형의 사건으로 위로를 할 수도, 동정을 할 수도 없는. 그러나 티내고 그를 거부할 수는 없는.

나오키는 이런 주변사람들의 변화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형으로 인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이다. 형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본인의 삶도 망가졌지만 절대로, 주변의 누구에게도 화를 내거나 투정을 부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은 살인자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나같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_ 책 속에서(P.201)

뉴스에서는 어제도 오늘도...살인사건과 같은 강력 사건에 대해서 끝임없이 보도한다. 매일 아침 뉴스에서 접하는 소식에 놀라고, 무서움을 느끼지만 이내 잊혀지고, 무뎌지는건 저건..나와는

상관이 없는 TV속의 사건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주변에 가해자의 가족이 생긴다면? 단순 사고가 아니라 의지를 갖고 저지른

살인이라면?생각만으로도...내가 과연 그 사람을 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생각해보면 YES라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도 나오키의 친구들과 같게 되지 않을까. 절대 그사람을 원망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지만 전과 같이 가까이 다가가진 않으려하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인을 저지른 형은 교도소라는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홀로 감당한다. 피해자의 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동생에게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자신 대신 사죄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이나 동생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을 담아 동생에게 매번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현실에 남겨진 나오키는 살인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마치 살인에 가담한 사람처럼

사건이후 평생을, 형의 죄값을 치르고 살아간다.

친했던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어렵게 얻는 직장에서는 가족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하고 들통이

 나면 자연스레 회사를 나오게 된다. 자신의 장기를 발견하고 그 길로 나아가려 했다가도 형의

 죄로 인해 꺾이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도 솔직하지 못하게 된다.

처음에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나오키를 향해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 생각들.

그는 가해자가 아닌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왜저런 대우를 받는걸까..하지만 나였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꾸만 망설여진다.

평생을 숨기려하고, 포기하고, 도망치는 삶을 살아온 나오키가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형의 죄로 인한 그림자가 지려하자 처음으로 부당하다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때, 그가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이란 분이 그에게 말한다.

"자네 형은 말하자면, 자살을 한 셈이야. 사회적인 죽음을 선택한 거지. 하지만 그로인해 남겨진 자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이 벌을 받는 걸로 끝나는게 아닐세. 자네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까지도 자네 형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란 말일세. "

사장님의 말에서 그간 떠다니던 물음표가..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가해자의 가족이 단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살아가는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맞다와 아니다" 사이에서 계속 고민했었는데..

작가조차 답을 물으며 썼다는 이책은 여느 소설책과는 조금 남는게 다른 느낌이다.

읽기는 정말...순식간에 읽는데, 다 읽고 나서 뭔가..토론이 하고 싶어지는 ㅡ.ㅡ;;;

정말 왜 히가시노 게이고란 사람의 글을 자꾸만 보게 되는지...이유를 알겠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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