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하면 좀 어때 - 이런 나인 채로, 일단은 고!
띠로리 지음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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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수영 전도사를 자처하며 지인들에게 수영을 권하고 있다. 가까운 이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상의 먼지에 파묻혀 얼굴이 버석버석해 보인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그 슬픔이 내게도 전해져 와 마음이 저릿저릿할 때, 나는 그들의 마음을 멍게 채취하듯 가슴에서 쑥 빼내어서 전부 다 빨간 대야에 넣는 상상을 한다. 대야 가득 따뜻한 물을 채운 뒤 한참 동안 마음을 불리고서 솜씨 좋은 수산물 시장 아주머니처럼 바락바락 씻은 다음, 햇볕 좋은 날 바싹 말려서 소독하는 것이다. 꿉꿉함이 가신 마음에는, 혹여 남아 있을지도 모를 슬픔의 냄새조차 남지 않도록 탈취제를 뿌리고 다시 가슴에 넣어 꼼꼼하게 바느질해서 닫아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을 수산물처럼 빡빡 씻겨줄 수는 없는 일. 대신 수영 한번 해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p.67 중에서.


어딘가 엉성하고, 어쩐지 짠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사랑스러운 인형을 만들고 있는 띠로리소프트(tirorisoft)’의 대표 띠로리. 책은 저자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제목을 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읽다보니 공감가는 글들이 꽤 많다. <허술하면 좀 어때>를 통해 '띠로리'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이 곳에서 만드는 인형들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말로만 듣던 엉성하면서도 허술한 인형들의 모습이 나타나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누어 계획을 짜고, 아둥바둥 실천하려 애쓰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빼곡하게 짜놓은 계획들 중에서 미처 해내지 못한 계획들을 보며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는데 계획을 세우고, 어차피 실패할 걸 알면서 조금이라도 덜 실패하고 싶어 무려 세 권의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운다는 저자를 보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새롭다. 짜놓은 계획을 해내지 못한 것에서 오는 자책은 줄일 수 있고, 하나라도 해낸 것이 있다면 나에게 칭찬 해줄 수 있으니 성공하거나 실패하게 되어도 어느 쪽이든 다 괜찮게 되는 것이다. 이런 단순하면서도 현명한 논리라니.

'허술함'은 복잡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조금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기에 속도가 다른 것도 당연하며 꼼꼼한 사람이 있듯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조금 부족하고, 허술하면 어떤가. 허술한 나인채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범한 듯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책을 읽는내내 공감하며 '그렇네, 그렇지'라는 말을 연신한 것 같다. 나도 꽤 허술한 편인데, 그런 내모습을 인정하고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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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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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여섯 권의 책을 출간해 이미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 조엘 디케르의 장편소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가제본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엔 이번에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과 <볼티모어의 서>에 이어 삼부작의 완결편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완결편을 먼저 읽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소설에서는 살인사건 당일인 1999년과 2010년이 교차되어 나온다. 1999년 4월 3일, 아침 7시에 조깅을 하던 여대생 로렌은 곰이 여성의 시신을 물어뜯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숨진 여성은 마운트플레전트의 제이콥주유소에서 일하며 배우가 되기를 꿈꾸던 알래스카 샌더스로 늘 상냥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대하던 사람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와 지문은 그녀의 동거남 월터 캐리와 친구 에릭 도노반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매트 반사 경사와 페리 게할로우드 경사는 살인 현장에 투입되어 유력한 용의자들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나서며 수사에 전력을 다한다. 범인을 찾아나서는 과정은 다수의 스릴러가 그렇듯 과거의 일을 끊임없이 되짚으며 미처 드러나지 못한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인물들이 진실을 향해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사건 구성과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으로 실제 존재했던 사건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스릴러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사살, 프랑스 스릴러 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프랑스 작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소설이다. '조엘 디케르'라고 하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뻤고, 언젠가 출간될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앞서 나와있는 그의 작품들을 천천히 읽으며 치밀한 구성과 예기치 못했던 반전 매력을 잔뜩 느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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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
이희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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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은 다소(?) 과격한 제목이 시선을 끌어서 읽게 된 책이다. 책에서는 사람들의 온 몸이 반투명하고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플라스틱 병'이 존재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죽은 연인의 초상', '악취', '역 피크말리온',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 등 네 편의 단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환경오염 탓인지 급변하는 기후와 새롭게 출현하는 바이러스들로부터 인류가 위협받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세 플라스틱이 신체에 쌓이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이 플라스틱이 된다는 설정 자체가 허무맹랑하다 싶으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난 이후인 지금에 와서는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는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는 인간이 처치곤란한 쓰레기가 되는 세상에서 서로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게 드러내고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인간들의 모습처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을 때 여과없이 드러나는 인간들의 모습이 끔찍하게 그려진다.

'죽은 연인의 초상'에서 나영은 며칠 째 연락이 되지 않았던 연인 준에게 전화를 받는다. 플라스틱 병을 연구하다 결국 플라스틱이 되어버린 준에게 마지막 부탁을 받은 나영은 항체를 발견하게 된다. '악취'에서 수진의 남편은 플라스틱 병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관을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집을 비우고, 아가씨는 어머니를 절로 모셨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걸어온다. 수진은 시어머니의 시체를 떠맡게 되는데... '역 피그말리온'의 수현은 딸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달라는 연의 의뢰를 받으며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에서 태주는 재활용 센터에서 근무하며 알게된 비밀을 은폐하고, 실종된 동생을 찾아나선다.

학부모가 교사를 괴롭히고, 엄마가 아이를 야산에 묻고, 연인을 살해하는 흉흉한 세상...... <인간쓰레기의 처리방법>은 끔찍한 소식들을 전해듣는 중에 읽게 된 소설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담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는데, 부디 다가올 세상이 어둡지만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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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만나 작은 책마을 54
박용숙 지음, 미늉킴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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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기대와 설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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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만나 작은 책마을 54
박용숙 지음, 미늉킴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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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소희의 학교가 개학하는 날이다. 더구나 이사하고 새 학교에 가는 첫날인 만큼 궁금한 게 많지만 엄마 아빠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학교에 가면 다 알게 된다는 말뿐이다. 내심 불안했던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방 안을 빙빙 도는 소희에게 엄마는 정신 사나우니 나가서 돌라고 한다. 서운한 마음에 꽥 소리를 지르며 나왔는데, 눈 앞에 떡하니 학교가 보인다. 소희는 학교를 구경해 보고 싶어 운동장 안으로 들어섰다가 맨드라미 사에에서 날개짓을 할 때마다 무지개가 너울너울 생기는 나비를 발견한다. 나비는 곧 사라지고, 나비 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알려주는 검은색 고양이와 만나게 되는데......


나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했기에 이사나 전학의 경험이 없다. 다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면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든 경험해봤을 만한 감정인데, <내일 만나>는 아홉 살 소희의 순수함을 내세워 그 감정들을 어예쁘게 풀어가고 있다. 학교에서 만난 배지테리언 고양이와 토끼, 닭, 달팽이, 생쥐들로부터 반 친구들의 이름과 특징을 전해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희의 두려움 감정들이 해소되는 것을 대리체험 할 수 있게 된다. 책에 그려진 삽화들은 꽤 단순한 편인데, 단순한 대로 소희의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크게 들이마셨어. 배 속이 간질간질하고 웃음이 헤실헤실 나왔지. '채송화를 만나면 달팽이가 전해 달라는 말을 해야지. 그리고 다른 애들이 달팽이의 명상을 방해하지 못하게 막아줄 거야. 이지호에게는 강당에 있는 생쥐 이야기도 해야겠어. 참. 김우주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 일단 눈싸움부터 해서 누가 실력이 좋은지 가려 볼까? 강한솔과는 고양이랑 토끼가 했던 한솔 브이도 해 볼 거야.' 소희는 학교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어.

p.73-74 중에서.

소희의 신비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통해 두려움 감정이 기대와 설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어린시절에 그저 신나게 놀던 때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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