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생각을 나누기 위한 도구 이상으로 우리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다듬을 수 있게 하는 도구다.

스탠퍼드 대학의 캐럴 드웩arol s. Dweck 교수는 지식능력에 대해 두 가지 다른 태도를 확인했다. ‘성장 태도 growth mindset’를 가진 사람은 배우고 노력하면 지적 능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하는반면, ‘고정 태도entity mindset‘를 가진 사람은 지적 능력은 타고나며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지능과 무관한데, 일반적으로 성장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더 잘 배우고 어려움에 봉착해도 더 잘 극복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성장 태도와 함께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이 필요하다.

첫째,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글쓰기를 반복한다.

둘째, 한 번에 많이 쓰는 대신 가능하면 매일 같은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쓴다.

셋째, 주장이 담긴 논리적 글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쓸 때 더성과가 좋다.

넷째,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잘 쓰려면,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텍스트보다는 글쓴이의 주장이 담겨 있는 글을 읽은 다음 그 주장에 대한 입장을 정해본다.

다섯째, 자신이 쓰는 글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해보는 것이다.

글을 읽으며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글쓴이가 주장을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지 분석해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찬성이든 반대든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도 다른 사람의 논증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활동과 자신의 주장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과학은 서로 경쟁적인 주장 가운데 인정할 것과 기각할 것을 판단하는 논증력에 기반을 둔다."

예를 들면, "모든 X는 Y이고, 모든 Y는 Z다" 라는 선제로부터, "모든 X는 Z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타당하지만, "어떤 X는 Y이고, 어떤 Y는 Z다" 로부터 "어떤 X는 Z다" 라는 결론을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밝히려 한다.

1 원 글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 글이 아니면서,
2 원 글의 핵심 주장이 포함되어 있고,
3 원저자가 동의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정해놓은 시간 내에 읽고 주장을 만들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주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 해도 결국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1 어떤 주장이 맞는지 보이는 글
2 잘 알려진 현상의 배후 기제를 보여주는 글
3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다르거나 혹은 그 반대임을 보여주는 글
4 새로운 현상이나 효과를 제시하는 글

독창성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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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데뷔작.
당시 상황을 반영한 주인공들의 역동적 스토리에선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고, 감정을 세밀하게 상상하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문장 안에선 쿤데라만의 문학적 감성을 많이 녹여냈다.

여자친구에게 한 농담 하나로 개인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편의 깊은 영화를 보듯 전개한 그의 사고와 필체가 놀랍다.

특히 주인공 루드비크의 삶을 돌이켜보면 ‘퐁듀(퐁뒤)’가 떠오른다.
역사의 장난처럼 그 사회의 꼬챙이에 찔려 지글지글 끓는 기름(치즈 말고) 속에 빠지고, 익어가는 고통의 과정을 겪은 후 다시 본 세상에 나오는 모습으로 말이다. 너무나도 괴롭고 비극적이지만 결국 열 속에서 익으면서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은 듯하다. 증오와 복수의 허망함, 이념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예술과 사랑, 고독한 존재 간의 연대가 무엇인지 그는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사실 ‘농담’하면 이문재 시인의 시 ‘농담’도 같이 연상된다.
솔직히 아직도 왜 이 시의 제목이 ‘농담’인지 잘 모르겠지만..ㅎㅎ
가볍게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이 시의 마지막 연처럼 이 책도 농담으로 쓴 엽서에서 루드비크의 삶이 고난의 경로로 바뀌었고 우리에게 짙은 메세지를 남기는 것 같아 좋다.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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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데 다만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다른 것들까지 보는 것이다. 이미지는 그저 괜히 존재하지 않는다. 집이 보금자리가 되는 것도 이미지에 의해서다.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아니다. 진정한 종교는 한 시대의 일시적인 권력의 혜택을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속의 적의는 오직 믿음을 더 굳세게 만들어 줄 뿐이다.

그런데 왜 그 꽃들을 집어 갔던 거지?
그것은 그녀가 슬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은 복수하고 있어요. 당신은 사람들을 도와주고는있어도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느껴져요.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낄 수가 있어요. 하지만 증오는 또다시 증오를 낳고 복수의 복수를 계속 불러올 뿐 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나요? 루드비크, 당신은 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지옥에서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가엾습니다.

나는 먼지 이는 보도를 따라 걸으며, 내 삶을 짓누르는 공허, 그 공허의 무거운 가벼움을 느꼈다.

언제나 나는 루치에가 내게 일종의 추상이고 전설이자 신화라는 생각을 즐겨 되뇌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적인 말의 배후에서 전혀 시적이지 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루치에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누구인지,
그녀 자체로서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오로지 (청년기의 자아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던 탓에) 나에게로 (나의 고독, 나의 예속, 애정과사랑에 대한 나의 욕구로) 곧바로 향해 있는 측면에서만 받아들였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내가 체험한 상황의 기능에불과했다. 내 삶의 이 구체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모든 것, 그자체로서의 그녀 모습은 모두 간과되었던 것이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 P493

나는 언제나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의 조화를 믿었다. 그것은 헛된 미망이었다. 지금 나는 그중 하나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것이었다. 현실 세계로부터. 내게 남은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 상상의 세계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 나가는 데에는 그곳만으로, 그 상상의 세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누가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해도.

이런 고독 속에서 이 세계는 정화되었다. 나에 대한 꾸짖음으로 가득한 이 고독은 마치얼마 살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이 세계를 정화했다. 그 고독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눈부시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 고독이 그 세계를 나에게 되돌려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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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며 다양한 산업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인류 문명을 뜻한다.

신개념들이 많이 나오네?! 흥미롭다. 안 그래도 요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혁명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해야 도태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들어서 써봅니다.


포노(Phono)족은 첫째, 활발한 뇌 활동을 하고, 둘째, 소통하며 협업을 한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SNS를 활용하며, 온라인 마켓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게임, 영상 등 유희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세계 곳곳에는 이미 포노 사피엔스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발달하여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 말이다. 이런 거대 기업에서 제공하는 세세한 서비스(예를 들면, 아마존의 처방 약을 배달하는 필팩, 오늘의 코디를 촬영해서 평가하는 에코 룩 등)는 고객 맞춤형으로 기술 발달과 함께 더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실력’으로 인기와 명성을 얻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유명한 유튜버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성공비결은 고객(시청자)에게 잘 보인 게 크다. 킬러 콘텐츠가 있다면 이를 공유함으써 팬덤이 형성되고 팬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이 때 킬러 콘텐츠의 핵심은 ‘진정성’. 솔직한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팬덤을 유지할 수 있다.

작가는 디지털 혁명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며 이러한 변화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현명하게 활용하며 공생할 수 있는 방향을 찾도록 설득한다.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휴머니즘적 요소를 강조한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인성과 세밀한 감성, 생각하는 힘 등이 포함된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니... 문득 4차 산업혁명의 ‘인재’라 하면 나도 모르게 파릇파릇한 초등생부터, 10대-20대 학생들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디지털 문명에 더 친숙하며 잠재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생들말이다. 하지만 이는 고정관념이 아닌가. 나이를 불문하고, 하는 일을 불문하고 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는 시대인데..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며 한계를 짓는 행동을 멈추고,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야하지 않을까. 물론 사람마다 배움의 속도와 과정의 질이 다를 수는 있지만, 누구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인재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 속에서 시대에 발맞추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 꾸준히 파고들면 나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을까..?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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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르는 사이였다. 서로가 다 초면이고 익명인 이런 불투명함 속에서는, 타인들에게서 거칠고 낯설기만 한 모든 것이 가차없이 발산된다. 우리를 묶어주는 단 하나의 유일한 인간적 연결 고리란, 짤막하게 서로 무어라 추측이나 해 보고 있던 불투명한 미래뿐이었다.

나는 내 삶의 길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었다.

그러나 대담성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가슴에는 분명 많은 느낌이 가득했지만 머릿속엔 단 하나의 음절도 없었다.

그러나 불행의 씨앗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의 한가운데 숨어 있는 법이다. 그해 가을의 슬픈 일들은 이 짙푸른 여름에 잉태되어 있었다.

당시에 내겐 그에 대해 증오밖에 없었으며, 이 증오란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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