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데 다만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다른 것들까지 보는 것이다. 이미지는 그저 괜히 존재하지 않는다. 집이 보금자리가 되는 것도 이미지에 의해서다.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아니다. 진정한 종교는 한 시대의 일시적인 권력의 혜택을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속의 적의는 오직 믿음을 더 굳세게 만들어 줄 뿐이다.

그런데 왜 그 꽃들을 집어 갔던 거지?
그것은 그녀가 슬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신은 복수하고 있어요. 당신은 사람들을 도와주고는있어도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느껴져요.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느낄 수가 있어요. 하지만 증오는 또다시 증오를 낳고 복수의 복수를 계속 불러올 뿐 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나요? 루드비크, 당신은 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지옥에서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가엾습니다.

나는 먼지 이는 보도를 따라 걸으며, 내 삶을 짓누르는 공허, 그 공허의 무거운 가벼움을 느꼈다.

언제나 나는 루치에가 내게 일종의 추상이고 전설이자 신화라는 생각을 즐겨 되뇌어 왔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적인 말의 배후에서 전혀 시적이지 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루치에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누구인지,
그녀 자체로서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존재를 오로지 (청년기의 자아중심주의에 빠져 있었던 탓에) 나에게로 (나의 고독, 나의 예속, 애정과사랑에 대한 나의 욕구로) 곧바로 향해 있는 측면에서만 받아들였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내가 체험한 상황의 기능에불과했다. 내 삶의 이 구체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모든 것, 그자체로서의 그녀 모습은 모두 간과되었던 것이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 P493

나는 언제나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의 조화를 믿었다. 그것은 헛된 미망이었다. 지금 나는 그중 하나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것이었다. 현실 세계로부터. 내게 남은 것은 다른 하나의 세계, 상상의 세계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 나가는 데에는 그곳만으로, 그 상상의 세계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누가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해도.

이런 고독 속에서 이 세계는 정화되었다. 나에 대한 꾸짖음으로 가득한 이 고독은 마치얼마 살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이 세계를 정화했다. 그 고독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최후의 아름다움으로 이 세계를 눈부시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 고독이 그 세계를 나에게 되돌려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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