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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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찾아왔어. 제대로 찾아왔어.


창비교육의 제 1회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꼬리와 파도』는 2021년 체육교사 무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제자들을 보면서 이 '낯설지 않은 순간'이 자신의 일이였던 1999년도의 청소년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그때의 도움이 꼬리가 되어 파도처럼 다시 현대의 연대로 이어지는 '모두가 지켜주고자 하는 이야기'이자 '지켜주는 이야기의 책이다.

이 책은 현재의 이야기로 시작해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이런 액자식 구성을 통해 시대별 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폭력의 고리 역시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담아냈다.

교사와의 갈등에서는 세대간 인식 차이 및 권위의 악용과 맞서고, 이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다루고, 동성 친구와의 갈등에서는 사이버/물리적 폭력과 보이지 않는 서열에 대해 다룬다. 즉 다양한 개성을 지닌 각각의 청소년이 저마다의 위기와 시련을 겪으며 폭력과 권위에 맞서며 연대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친구들과 같은 박자로 뛸 때의 발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든 될 수 있을것 같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넓고 따뜻하고 단단한 집을 짓자.


축구와 태권도를 잘하여 여러모로 인기 많은 무경, 학교 폭력과 왕따로 강해지고 싶었던 예찬을 중심으로 주변에 저마다의 상처를 앉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세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적인 갈등과 위기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환기시킨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사건들은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과거이자 바꾸지 못했던 현실이다. 결국 상처 입는건 청소년들이였고, 독자들은 이들의 성장을 바라면서 독자 자신의 성장의 발판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고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스쿨 미투 사건' 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의 여고생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속에서의 일상은 성희롱과 언어폭력, 성추행은 만연하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때문에 '내가 만만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 같고, 성희롱과 차별 발언 제보를 한다 한들 조사를 받는 교사는 '친근함의 표현'이었을 뿐이였으며, 조사를 받고 돌아온 교사는 자신을 지목한 사람을 찾아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놓기 쉽상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주변 사람들은 되려 '피해자'에게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들춰내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되었기에 '그런일'들은 흔하게, 사라지지않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억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조용히 지나가는것만이 답인것 같은 날들이 말이다.

나만 그런것도 아니지만, 나만 시끄럽게 굴일도 아닌것만 같은 날들이 말이다.


우리의 몸을 버리지 않으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하고, 누군가에 의해 침범당한 것은 '개인'의 처신 문제인것 처럼 여겨지게 했다. '쯧쯧쯧, 조심좀 하지'라는 시선으로 '네'탓을 하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권리를 빼앗고, 인권을 빼앗는 2차, 3차가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모른채.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인가.

잘못한 사람은 있지만 잘못한 사람이 저지를 일을 당한 사람의 그 다음은 없었다.


학교 안을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순간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무방비한 아이들을 찌르는 말들,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인 말들.

그 말을 한느 사람들과 그들을 방관하는 사람들.

그런 말들과 사람들을 수면위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수면 위로 들춰내고 싸우는 일은 외로웠고 주변에서 등을 돌리는 일은 흔한 일었다.

그럼에도 목로리를 내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분명 주변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용기를 퍼트리기 마련이다.


넌 잘못한 것 없다.

잘못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요.

아이들은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건 아니었다.


이들은 서로 품고 있던 상처를 드러내어 '너의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지나간 너의 상처와 앞으로 다가올 비슷한 상처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연대의식으로 아픔을 나눈다.

스쿨 미투의 꼬리는 포스트잇이였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With you 라는 글자와 혼자가 아니야, 지켜줄게라는 글자가 나타나며 번지기 시작했다. 이 책 속의 꼬리는 유등축제에서 나타났다. 자신과 친구들이 겪은 일들을 리본에 적어 유등 축제장에 전시된 유등에 몰래 매달아 긴 파란 꼬리를 이루었고 큰 파도처럼 인터넷 카페와 언론의 관심을 얻어내면서 연대의 긍정적인 목소리로 앞으로 보다 올바른 길로 바로잡아가며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용감한 일을 하려면 용감해져야지.

우리는 마음을 꼬리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꼬리의 파도는 결국,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 결국 '변화'를 이끌어 갈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물결의 흐름으로, 우리의 지나치지 않는 실천력에 대한 호소이다. '나라도' 귀기울여 들어주겠다. 지나치지 않겠다.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잘 얘기했다고 다독이며 다정한 눈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겠노라고. 그리하여 앞으로도 이어질 '성장과 연대의 가치'를 믿고 있노라고.

'우리'가 지켜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친구들의 목소리에 응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도' 지켜줄게.


그리고 그 "지켜줄게"의 파도의 힘은 소설의 맨 처음 대사이기도 했던 '제대로, 잘 찾아왔어"라는 말과 다시한번 맞물리며 함께 다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는 비록 작지만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성장하길 응원하는 친구와, 기꺼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어른과, 세상에 울림으로 퍼질 수 있도록 공동체가 모여진다면 세상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한걸음씩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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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수호대 꿈꾸는돌 35
김중미 지음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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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이른바 『대포읍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김중미 작가의 신작 『느티나무 수호대』가 출간되었다.

이주민들의 가족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이다. 느티나무의 보호를 받던 친구들이 느티나무를 수호(守護: 지키고 보호함)하고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와서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한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한 곳에서 서서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도 봄부터 가을까지 쉼없이 일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땅 밑에서 하는 분주한 일들에 대해 잘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도 인간 못지 않게 복잡다단하다.

우리는 주변의 다른 생물들과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왔지만

때때로 우리를 해치는 존재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런것 처럼.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풀, 덩쿨을 비롯하여 작은 나무와 큰나무, 작은 동물과 큰동물들이 땅에서 어울렸으며 먼나라까지 여행갔던 철새들과 내그내새, 작은 벌레들까지 계절과 어울어지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숲의 속성이다.

지금은 비록 덩그러니 언덕 위에 홀로 남아 있는 느티나무가 하나 있다. 이 느티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이루는 '대포읍'이라는 마을은 베트남, 미얀마, 중국, 서아프리카 등 다문화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느티나무는 수백년전부터 이곳에서 자리를 마을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마을을 지켜왔다.

당산나무, 큰나무, 해나무라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는 대포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애어른 할것 없이 추억이 얽혀 있다.


나는 대포읍의 당산나무로 홀로 살아남은 것이

자랑스럽기보다 미안하고 아프다.

수시로 숲의 일원으로 살 때를 그리워했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평화로운 때는 아이들을 누여놓고 간 엄마들을 대신해

산들바람을 불어 줄 때였다.

아기들을 돌보며 나는 마을 공동체와 유대감을 느꼈다.

조금씩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지고,

어둠이 사라진 밤을 견디는 법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시의 속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한다.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홀로 있지만 '숲'이라는 공동체를 이뤘었고, 지금은 '마을'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느티나무에는 판타지적인 비밀 한가지를 가지고 있다.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의 정령 '느티샘(홍규목)'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대포읍의 대포초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나아가 아이들을 느티나무 안쪽의 신비한 공간으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는 환대하며 맞이하기에 아이들에게 있어 '소중한 곳' 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자신들이 받은 소중함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하면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다문화 꺼져라, 다문화로 감성팔이하냐", '"중국으로 꺼지래", "그런말 나도 똑같이 들었어. 아프리카로 가라는 말 한두번 들은게 아니야" 등의 말을 많이 들어왔던 친구들이였다. '다문화 아이들'을 '너희'라고 말하는 것에도 결코 다채롭고 다양하다는 뜻이 아닌 '루저'집단을 말하는 것만 같이 아파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맙고, 대견하다. 견뎌줘서. 너는 참 강한 아이구나

반가워. 언제든지 와서 쉬다 가도 돼.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환대 받는 기분, 처음 본 나를 환대해줬어.

환대해 준 덕분에 용기가 났거든.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고맙다, 대견하다, 반갑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님에도 자주 건내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해 주며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면서 존재하며 견뎌냈을 애씀과 대견함을 인정해주고, 지금껏 힘내서 살아와줘서,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고맙다는 이 따뜻함이 가득 담긴 말은, 온 몸으로 '환대'받는 기분 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환대의 경험은 '인정'에서 나아가 '응원'이 된다. 앞으로의 삶에도 살아갈 '힘' '용기'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전달되어 퍼지게 된다. 이는 '희망'이 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다.


마을의 재개발추진으로 느티 언덕이 통채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제든 끝이 있는 법이야" 라며 계속해서 사라지던 숲과 자신의 가족과 조금씩 변하고 있던 주변 환경 속에서 이미 자신의 끝을 받아들인 느티샘과는 달리 아이들은 샘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재개발과 느티샘의 이야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레인보우 크루' 2기를 만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티 언덕을 알리고 지켜내고자 한다.

"이번 청소년 댄스 대회는 온라인으로 열린대. 각 팀이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거기서 열팀을 뽑아서 한국 결선 대회를 열고 유튜브로 중계한대. 그때 우리 느티나무 얘길 하려고."

BTS는 러브 마이셀프 캠페인을 통해 환경, 평화 등의 주제를 많이 알렸던 그룹이다. 때문에 BTS의 노래와 춤으로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같고 같이 목소리를 낸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이들은 '다문화 청소년 댄스 그룹'인 '레인보우 크루'를 다시한번 만들어 내고자 했다. 춤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자신감 있는 모습과 그 자신감과 용기가 이어질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스스로의 능력을 끌어 올리면서도 공동체 문화까지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린 서로 다 다르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진 않아요.

이렇게 대포읍에서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레인보우 크루 친구들은 우리 모두 '동등'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함께'하는 책임감, 우정, 연대 의식으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위기가 닥치면 나 이외의 존재에게 더 집중하고 살핀다.

위기일수록 이웃과의 협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만큼 슬기롭고 이타적인 존재는 드물다.

내게는 그것만이 희망이다.

나는 아직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더 믿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힘을 믿는다.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느티나무 수호대』 의 느티샘과 대포읍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일방적인 의존이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지지와 버팀목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줄 알며, '함께' 살아갈 줄 안다. 느티샘에게 받았던 다정함을 기꺼이 타인에게 베풀고 공유하며 키워나가는 모습은 아직은 우리에게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연대의 힘을 믿고싶게 만든다.


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서로 협력해가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느티나무수호대 #돌베개 #김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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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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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는 탈북 여성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는 장애인을, 그리고 『버샤』에서는 난민을. 창비에서 최근 나온 신간들은 모두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소외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직 내리지 않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직 짓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 술에 벌써 취하였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쟁에 상처 입고 죽었습니다.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나는 더 이상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13C 페리스안 시인 루미,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소설 중간에 나오는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라는 시는 이러한 난민들의 입장을 짧고 강렬하게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는 히잡을 쓴 여성이 출국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다. '이란', '공항'

그리고 그 두 단어는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되었던 나세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에 얼핏 지나가는 뉴스로 공항을 떠났던 나세리가 결국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실제로는 이란의 왕정 반대운동으로 추방당한 나세리가 난민신청을 하여 영국으로 가던 도중 프랑스에서 난민서류를 도난당해 무국적상태가 되어 터미널에 머물게 되었지만, 영화 터미널에서는 톰행크스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모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 되어 입국을 거부당하면서 난민신세가 되어 뉴욕 공항에 머무는 이야기로 그려졌다.

실화건 영화건 모두 난민이 되어 공항에서 머무는 이야기로, 이 소설 속에서의 이란 가족 역시 아직 영토구역이 아닌 공항에서 한 난민 심사 신청이 효력을 갖지 못하고 불회부결정이 나면서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생활이 곤궁해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재난으로 어쩔 수 없이, 종교나 사상 등의 정치적 이유로 자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집단적 망명자, 이재민들을 "난민"이라 한다.

거대한 성이자 화려한 시장통 같은 "공항"은 사람들이 여행 등으로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엇갈리며 오가는 사람들로 닫혀있으면서도 열린 공간이자 설렘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으니

우린 이미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

표명희 『버샤』 中


'국경'과 '마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 대화는, 이 책이 '난민'과 '공항'에 관한 이야기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난민 인정 심사를 볼기위해 기다리던 중 세계적 전염병 유행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텅 빈 출국장에서 생활하는 버샤 가족들을 통해 공항의 재발견과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이라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무슬림 가족들이 난민 심사를 위해 공항에 체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버샤』로 써냈다.


뱅크시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남긴 벽화 '발레리나'처럼 무모하지만 경쾌하고 매력적인 창작물에 감명받은 작가는 버샤 역시 내전 중 실어증에 걸렸지만 공항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어떻게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는지 그 과정 속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쿠란에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엄연히 나와있는데도 '남녀 유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소외된 무슬림의 딸들은 그런 풍토에 적응해 오며 자유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불의와 구속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무슬림 '여자'로 길들여 온 결정적인 수단이 히잡이라는 생각에 히잡을 싫어하던 버샤는 달랐다. 이슬람을 사랑하면서도 '일방통행'처럼 무슬림 딸들에게 하나의 길만 주어진 가부장제, 남자는 가해자여도 거리낄게 없지만 여자는 피해자여도 죄인이 되는 이슬람 문화는 과감하게 비판할 줄 아는 독립적인 성향의 버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익명의 '난민'이 아니라, 정체성 고민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인권에 대한 환대의 가치를 깊이있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난민 가족 버샤가족이 어쩌다 난민이 되었으며 공항 출국장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전반부 이야기와, '한국판 터미널'로 난민을 주제로 기사화 되었다가 점점 버샤의 '개인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기사로 인한 갈등, sns의 파급력, 인권변호사와의 만남, 진우와의 로맨스를 담은 중반부 이야기, usb 편지, 교회 바자회, 코로나로 인한 공항 폐쇄, 버샤의 '개인적인 사건'에 숨겨진 반전과, 목소리를 되찾으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내며 극복하려 용기내는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어린 버샤와 더 어린 버샤의 동생들의 시선으로 그려나갔다는 점이다.

'난민 수용소에서는 난민처럼 있어도 되지만 공항에서는 이용객처럼 있어야 한다'라는 규칙아래 '난민 인정을 간절히 바라는 난민'으로서 국민도 아니고 난민도 아닌 존재로 공항에서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 버샤 가족.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렁'일 지언정 '난민 캠프에 비하면 호텔급'인 공항은 마냥 놀이터처럼 그려졌다. 수많은 면세점을 보면서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 놀러온것 같은 기분으로 게이트를 누비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수'가 쏟아지는 화장실을 내집처럼 드나들고, 여행에 들뜬 사람들이 탑승 게이트에서 잃어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던 공항의 모습을 '문화적 차이'라는 관점과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색다른 시점에서 관찰되고 묘사된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관점 두번째는, 이 중동 아랍소녀와 교류하게 되는 공항 비정규직 근무자 진우(J)가 버샤와 가깝게 지내면서 중동 현대사 공부를 비롯하여 중동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와 가깝게 느끼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건 그 사람의 '배경'과 '환경'도 함께 다가온다는 것이기에, 진우는 버샤가 속해있는 문화를 우리와 다른, 먼곳의 이야기가 아닌 밀접한 교집합 관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진우와 진우 친구를 통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대한 인식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와 입장 차이 까지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우리의 통념, 상식, 편견 들에 대해서도 친구들과의 의견다툼으로 다루면서 거꾸로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는 화법이 이 자칫 사회적인 문제로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항,분노에서 시작한 혁명은 결코 성공 할 수 없어.

그건 사랑에서 출발해야한단다.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건 세상에 없단다.

표명희 『버샤』 中


더욱이 이야기는 무겁지 않도록 다루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포용, 연대, 영향력, 그렇게 결국 '사랑'으로 흘러가게 된다.


버샤가 버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스스로 말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영향력이 컸다. 그리고 버샤는 이제 그 영향력을 다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할일을 찾았어요"라는 J의 말은, 이 책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함께 부딪혔던 여러 난관과 편견과 소수목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여 이제는 생각을 접고 우리 역시 실천할 때다.

섣부르지 앓게 차분하고 치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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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12의 샘 - 믿고 읽는 소설가 7인의 테마 소설집 창비교육 성장소설 3
고비읍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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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학교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그려진 단편 소설집으로 『B612의 샘』을 비롯하여 이종산, 안세화, 고비읍, 조우리, 이꽃님, 허진희, 조규미 7명의 작가의 7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미래 학교의 형태나 교육의 방법의 변화를 보여주는것 같이 느껴질 수 있으나 결국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꼭 품고있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니 이 시기의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또래집단의 형성'이다. 친구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만큼 우정을 깊게 나눌 수 있는 관계 형성과 어울리고 다투는 일련의 과정들을 가장 어려워하는 시기이다. 같은 나이대라는 이유로 한 공간에 두지만, 같은 교육을 배울 뿐, 정작 '친구 사귀는 법' '다툴 때 화해하는 법' '우울한 친구를 위로하는법' '맞지 않는 친구를 대하는 법' '우정을 유지하는 법' '취미를 존중하고 공유하는 법' 등은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경험하면 나아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유소년, 청소년 시기라는 긴 시간동안 학교에서 다양한 경험과 관계를 쌓으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은 결국 미래의 아무리 고도화된 기술이 교육의 형태와 방법을 바꿀지언정, 아마 학교라는 공간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지난 2020년, 처음으로 맞는 감염병 시대를 보내며 아주 많이 당황했고, 그건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사상 처음으로 개학을 4번이나 미뤘고, 사상 처음으로 수능도 미뤘다. 개학 '연기'만을 외치던 교육부는 결국 사상 처음으로 공교육기관의 '온라인'개학이라는 방법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플랫폼이나 네트워크 구축이 잘 되어있지 않아 서버 폭주는 기본이었고, 출석체크랑 수업방향을 가다듬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린 결국 적응하였고, 6월이 되어서야 전교생의 ½, ⅓의 등교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며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해가기 시작했다. 이듬해 2021년도에는 학년별 교차등교를 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했다. 플랫폼도 안정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도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다시 그 이듬해인 2022년, 이제는 익숙한 '온라인 원격 수업'은 '감염병'뿐만 아니라 '자연재해'에서도 유연하게 적용 될 수 있게되었다.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였다. 감염병의 유행뿐만 아니라 태풍이나 홍수, 미세먼지나 황사 등의 자연재해로 학생들이 등교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온라인 수업 전환이 자유로워졌고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수업 일수를 조정하여 아예 휴업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에게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온라인 수업 외에도 학교의 변화는 또 있다. 바로 학생수 감소로 인한 학급 인원수 감소 및 학급 수 감소이다. 예전에는 1학년 10반 37번 이라는 학번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한 학년에 3~4개반으로 구성되고 한 반학생들은 20명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학생수가 줄어들며 선생님 수도 줄어야 했으며, 빈 교실이 늘어났기에 교실은 교과교실제와 스마트 교실(전자 칠판과 학생 개인 패드 사용)화 되었다. 학교는 이렇게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고 적응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지난 4월 발간한 성과 자료집을 살펴보면, '코로나19 감염 예방', '초·중·고 온라인 개학' 및 '원격수업', '교육바우처', '무상교육' 및 '무상급식' , '돌봄서비스', '고교 학점제', '고교정보블라인드', '스마트 교실', '그린학교', '디지털 신기술 인재 양성 혁신 공유 대학' 등의 단어를 접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학교의 변화가 느린것은 사실이나, 더디게나마 미래 교육을 차근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부 자료에서 <미래교육체제로의 전환>부분을 살펴보면 이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면, World Economic Forum (WEF, 세계경제포럼) 에서 제시한 '직업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미래에 사라질 직업과 늘어날 직업에 관한 것이다. 2022년까지 약 7,5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25년에는 기계(AI)가 전체 업무의 52% 이상을 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I의 대체로 사라질 수도 있는 미래 직업들로는 제조업(로봇투입), 은행원(모바일거래), 부동산중개인(온라인거래), 금융애널리스트(딥러닝), 패스트푸드 음식점원(키오스크), 스포츠경기심판(비디오판독), 건설노동자(자동화 건설기계), 농부(자동화된 농기계), 텔레마케터(ARS서비스 자동화), 사서(무인서비스), 전투기조종사(무인항공기), 경비원(홍채인식과 지문인식으로 보안화), 영화배우(CG), 바텐드(로봇), 의사(자동화 검진 시스템), 경찰·형사(일부 기술 자동화), 변호사·건축가·회계사(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자(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반면 새로생기거나 늘어날 일자리로는 인공지능·빅데이터 관련 전문, 3D프린터 관련, 신에너지 산업전문, 바이오헬스 전문, 고연령층대상 산업, 교육분야 등이다.

고도화된 기술을 다루는 직업군과, 인간다움이 발현되는 공감과 교감 및 관리가 필요한 분야, 그리고 아무리 학생수와 학급수가 감소해도 학생들에게 '배움'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교육분야는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군에 속해있다.


다시 책소개로 돌아와, 이 책에 수록된 7개의 단편들을 살펴보면 다 비슷한 설정들이 있다. 어쨌든 지금보다 적게는 20년쯤, 많게는 80년쯤 후의 미래 학교를 그리고 있고, 가상현실, 인공로봇 등 고도화된 네트워크 연결망이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라는 이름과 공간(대면과 비대면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만큼은 어떤 이야기에도 바뀌지 않고 등장한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성인'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인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기술력이 동반된 형태와 방법은 달라진 '배움'을 전달하는 것과, 의미는 다를지언정 '교실'과 '학급'도 여전했고, '졸업'을 앞세우며 평가하고 능력을 채점하는 시스템 역시 똑같다. 지금의 학교에서의 어떤 문화가 사라지고 어떤 문화가 남겨지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소외, 질투, 경쟁, 폭력, 차별 등의 문제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여전히 '문제'가 되는 현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문제'도 사라질까. 복잡한 '감정'이 해소될까. 모두 '옳은' 선택을 하게될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라고 모든 작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단편소설들의 각 줄거리와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종산 <B612의 샘>

학교는 매주 들어야 할 수업량이 정해져 있다. 선생님들이 미리 녹화해둔 수업 영상을 보면서 수업을 듣는 것도 있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각자 자기 사정에 맞게 일주일 동안 들어야 하는 수업량만 채우면 된다. 좋아하는 수업을 먼저 듣고 싫어하는 수업을 미루기도 하고, 한꺼번에 많은 수업을 다 듣거나 매일 2~3개씩 할당량을 분할하여 듣는것도 학생의 몫이다. 손목에 찬 미니 윈도우가 학교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 높은 수준의 가상 공간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메타공간 학교이나 복도나 교과 교실 등이 갖춰있으며 자신이 수업 받을 가상 공간을 자신이 직접 꾸며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도 있다. 학교에 따라 학생들의 얼굴 공개도 자율적이라 규칙에 따라 진짜 얼굴을 보여야하는 경우도 있고, 가상의 얼굴로 대체하는 학교도 있다. 가상공간이지만 가상 넘어에 모두 실재하는 동학년을 친구들이기에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리는 것은 같다. 이곳에서도 사회성은 길러내야 하기에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가상공간에만 존재하는 'A'가 뒤섞어 친구가 되어 외로움을 덜어주다 졸업할 무렵 서서히 멀어지기도 한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은 만남의 형태가 바뀐 미래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널 천천히 알아 갈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거야."


안세화 <다시만나는 날>

한 가정에 한 아이가 귀했던 것도 옛말이 된, 한 아파트에 한 아이가 있을까 말까한 시절로 접어든 2040년경 어른들은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자본과 인력에 대한 투자에 합의했고 공격적인 교육 개혁이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초중등을 합한 9학년 체제에 66차 교육과정과 함께, 사립학교가 모두 문을 닫고 거대한 부지의 국립학교들이 개교하면서 학교 운동장은 자연 친화적인 공원으로, 수업관, 놀이터, 식당, 기숙사를 비롯한 20개가 넘는 생활, 편의, 문화 시설을 갖춘 학교 건물 지어졌으며 정신적 결핍을 케어해주는 최신식 시스템에 따라 안정을 보장하기에 이른다. 예를들어 친구가 없는 학생을 위한 '메이드 AI' 등으로 말이다. 학교에서 서로를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만들어 갈 가정과 사회는 더 엉망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인간이 만드는것치고 완벽한 것은 없었다. 개혁 이후 학교라 해도 완벽하지 않았다. 학교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가정과 사회도 완벽하지 않았다. 단지 나아지려 노력할 뿐.

"인생이 이렇다. 작정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

그래도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이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편이 나아. "


고비읍 <나에게 물어봐>

학교에는 학생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두달에 한번 학생들의 상담을 진행하는 로봇 '온리'가 있다. 비밀유지, 태도일관, 적절조언으로 다년의 빅데이터를 쌓으며 개인로봇이 만들어졌다. 이를 '버디'라 하는데, 14살이 되면 누구나 새의 날개와 짧은 부리가 달려있는 친구같은 이 개인 로봇을 받아 20살이 되는 6년동안 이용한다. 카메라(CCTV)가 달린 눈, 스피커가 달린 부리, 모니터가 있는 가슴 그리고 날개 안쪽에 이용자와 보호자의 신상을 확인할 수 있는 개인코드가 있어서, 결제코드 연동시 대중교통 이용이나 상점 결제가 가능하며 본인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외에는 튜닝도 가능한 버디는 개인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신분증이자 지갑같은 존재다. 또한 학교의 모든 공지와 수업내용, 과제가 버디를 통해 전달되어 영상을 확인하거나 숙제를 제출할때도 버디를 이용한다. 성인이 되도 원하여 불법 버디를 만들고 사용하면서까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수상한 행적은 없는지 '의심'하며 감시하는 '버디와처'도 있다. 살아가면서 '의문'을 품는것이도 재능이다.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마땅히 해야 할일 들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검색만 하면 쉽게 답을 얻어지는 삶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길고 험난할 수록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만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야. 배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인건 사람도 똑같아. 사과하고 싶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가 났는데도 괜찮다고 말하고, 뒤에서는 욕하면서 앞에서는 좋아하는 척 해. 다 그렇게 살아."


조우리 <메타버스 학교에 간 스파이>

교통사고, 혐오시설, 각종범죄, 전염병, 학생 수 감소나 지역불균형으로 인한 폐교 위기, 장애와 비장애인의 통합교육 등 어떠한 제약도 경계도 없이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는 '메타버스 학교' 교육 관련 공약은 선거철마다 주요 쟁점이었다.

학교는 안전을 보호받는 최소의 울타리이자, 또래 아이들과의 최초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에는 즐거운 순간만큼 괴로운 순간들도 존재하고 이것은 물리적 공간으로 존재하는 학교 뿐만이 아니라 가상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한 '메타버스 시범 학교' 비밀 프로젝트를 운영하여 교육적 효과를 검증해보기에 이른다. 지금의 모습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상 학교공간에 '아바타'로 대체된 학생들이 있었고, 때문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올바른' 중학생의 모습으로 연기하는 '요원(가짜 중학생)'들도 섞여있을 수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 맘대로 되지 않는 법 메타 버스 학교는 1회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동시에 문을 닫았다.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학교가 학교지 뭐.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학교를 현실에서 없애면 문제도 같이 없어지나요?"



이꽃님 <에이저>

기술이 발달되면서 사람이 할일 수 있는 일이 제한되더니 수십년전부터는 AI가 모든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류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어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AI 능력을 이길 수 없기에 학생들은 좌절감만을 느낀채 배움을 포기하였고 학습의 가치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교육부는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구현된 가상체험 학교로 방법을 전환하였고 이 가상학교에서 졸업하려면 '에이저'를 통과해야 한다. 제시된 키워드(석기시대, 화재, 전쟁 등)와 관련된 가상 상황에서 AI와 대결하여 레벨(능력치)를 평가받는 학습법으로 이를 통과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것',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정, 협력, 지혜, 위기 대처 능력, 책임감 등을 강조했다. 지금도 고사와 평가로 학생들을 평가하듯, 미래에도 책임감이나 위기 대처 능력으로 '인간성'을 평가한다. 하지만 그 인간다움을 평가하는 주최도 결국 AI였다는 것을 안 학생들은 그 평가 기준에 의문을 품는다. 진짜 인간다움은 끊임없는 방황과 고민과 갈등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그것이 살아있는 증거이기에 고민하느냐 아무것도 결정 내리지 못한다 한들 괜찮다. 만약 어떤 것을 선택했다면 당신의 선택은 옳으며, 이렇듯 늘 누군가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허진희 <너에게 맞는 속도>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세운 명문학교로 전액 학비가 무료인 미르고등학교는 매학기 시험을 봐서 탈락자를 만들어내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졸업생은 미르대학교에 입학하는 치열한 경쟁구도를 지닌 학교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취향으로 장식한 홀로그램으로 학습을 돕는 인공지능 튜터(2043년 현재 3.0ver)를 지니고 있으며 학교 수업에도 튜터를 이용해 수업을 진행한다. 튜터의 버전 업그레이드의 가격이 높기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3.0ver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훨씬 낮은 버전인 1.5ver으로 수석입학에 첫 학기 시험 1등을 한 학생이 나타났고, 자신의 튜터1.5ver 가 아주 가끔 조금 느릴뿐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런 학생에게 게다가 그런 그에게 장학금의 명목으로 3.0ver 무료 업그레이드를 시켜주겠다고 했을때 학생들은 묘한 질투감에 휩쌓여 큰 반발을 일으켰고, 학교는 다음 학기 시험에도 1등을 한다면 이라는 조건을 다시 걸며, 장학금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겠다는 어중간한 태도로 타협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고 도움이 되어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학교의 교육 방법이 달라질지언정 시스템이 같다면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도 비슷할 것이다. 학생들이 반발했던건 무료 업그레이드라는 장학금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쁜거랑은 상관 없어. 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할 뿐이야."

조규미 <A가 오는 중>

미래 교육 위원회는 시간여행으로 지상에 없는 과거의 교실을 체험함으로써 현재의 인간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교육 현장의 종적 탐구 및 체험 프로그램', 일명 '공중 교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례를 모으고 있다. 시간여행 터널을 통과하는 '다이싱'상태를 거쳐야 하기에 정상적인 신체 활동이 가능해지기까진 체험 후 24시간이 소요되며 이후에도 회복하면서 작은 신체적 후유증을 겪게 되는데, 노화가 진행되지 않은 어린 나이일수록 후유증이 미미해서 대간 여행 대상자는 18세 미만으로 조정되었다. A,J,K 세사람은 12주동안 1999년의 학교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22세기에 이르면서는 몸속에 네트워크 연결망을 심는것이 유행이였고 교실은 실체없이 배움의 순간만 나누는 시간적 개념이였으며 기술의 도움으로 타인과의 접촉은 최소화 되어 살아왔다. 따라서 삐삐로 연락하는 원시시대 네트워크, 사라진 운동경기(축구, 야구, 배구, 탁구 등)와 동물원, 감염병이 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처럼 입김과 온도와 냄새가 날만큼 가까이에서 이야기 하며 잦은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은 낯설었다. 지금은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은 과거에 없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미래에 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A는 미래에 남겨져 있지 않은 사람과의 어울림, 응원, 지지가 낯설고 기뻐 미래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고 만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죠. 가능하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돌아가세요."




미래의 학교지만 현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그 시대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바가 매우 직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본질은 같다. '나다움'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 '행복'하기 위해 나와 주변을 잘 살필 것. 때문에 '인간성'이라고 불리는 그 따뜻함을 끝까지 놓지 않을 것.

한편의 이야기마다 작가의 말이 들어가있어서 작가의 집필 계기와 의도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b612의 샘>을 쓴 작가의 말에 가장 공감한다.

미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득하지만

사람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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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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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는 고양이가 등장한다. '그 고양이는 밤처럼 검어서, 해가 지면 밤과 분간할 수 없을것 같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고양이는 '샛별(루시퍼, 빛을 발하는자)'이라는 뜻을 지닌 '헬렐 벤 샤하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고양이는 중학교 2학년 정인이 앞에 나타나 3400년 동안 일하다 268년의 휴가를 보내고 있는 '악의'없는 '악마'라고 소개했다.

현정인, 빛날 정(炡)에 사람 인(人)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중학교 남학생은 제주도로 가는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을 받고 들뜨기 보다는 354,260원이라는 돈을 보며 계산을 먼저 해야 한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주 3회 일하는 햄버거 가게 알바에서 최저 시급 9,160원을 받으면서 얼마동안 일해야 하고, 킬로그램당 150원을 받는 폐휴지를 얼마나 수거해야 하는지를 계산하며 수학여행을 갈 수 없는 자신의 형편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마주친 정인이는 아르바이트장소에서 또 만난 고양이에게 따뜻한 패티를 데워주었고, 고양이는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집까지 쫓아와 대뜸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한다.


만약에, 그 한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단다.

악마는 인간의 욕망과 거래를 하기 마련이다.

악마는 정인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계속해서 유혹한다.

그리고 뭐든 '만약에'라는 한마디로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악마와 정인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생각이 났다.

타임리프(시간을 이동하는 일)라는 엄청난 능력을 손에 넣은 마코토가 시간을 돌리는 이유들은 하나같이 하찮다.

아침에 마음 놓고 늦잠을 자다가 시간을 돌려 지각을 면하거나, 노래방 시간이 다 되었을때 시간을 돌려 마음껏 노래를 부르거나,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을 다시 먹기 전으로 돌아가 꺼내 먹는다던가, 먹고싶은 음식이나 놓친 드라마를 다시보는데 쓰는 등 하나같이 소소한 일에 쓰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마찬가지로 악마의 큰 유혹에도 이 중학생 소년 정인은 '바퀴벌레가 한줄로 옆집으로 이사를 가는 일'이라던가 '와이파이가 더 잘터지는 일' 등으로 악마의 능력을 확인하는데 쓰는게 고작이었다.

"넌 하고 싶은게 없나? 소원이라든가, 꿈이라든가. 상상은 할 수 있잖아. '만약에'"

악마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정인은 별다른 바람이나 소원을 이야기 해주지 않는 정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아저씨가 이해하세요. 소원도 뭘 알아야 빌죠.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태워서 끽해야 난로랑 칠면조밖에 못 본거랑 똑같아요.


정인이 하고싶은것은 구체적인 소원과 바람이 아니었다.

'선택',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고르는 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은 온전한 가족도 선택하지 못했고, 가난도 선택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학교에서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을 나눠줬을대도 '제주도'가 뭐냐 차라리 '어디'가지 숙소가 이게 뭐냐 '어디'가는게 낫지 하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친구들과 달리 수학여행 자체를 가느냐 마느냐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도 못되었던 것이다.

이것과 저것들 사이에서 고르는게 아니라 그 길밖에 없었던 삶.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삶만을 살아왔던 터라 바람이나 소원은 가당치도 않았다.


'뭘 좋아해?' '뭘 원해?' '하고 싶은거, 갖고 싶은거, 먹고싶은거 없어?' 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며 계속해서 욕망을 바라는 악마에게, 정인의 대답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정인이 학교 아지트에서 텃밭을 함께 가꾸며 친해지게된 비밀 친구 재아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그 마음을 건들여도 보았지만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텐데요' '바보같아요' 라는 현실적인 정인에게 '만약에'라고 상상해 보라는 악마의 말은 미덥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인은 자신의 want와 need를 물어봐 주는 악마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물어봐 준건 고마워요. 누가 나한테 '~하고싶지?'라고 물어봐 준 거 처음이거든요. 내가 뭘 고르고 '선택'할 수 있다는거, 그거 진짜 좋네요.

신은 명령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거야.

악마는 민주적이구나'라며 정인은 웃었지만, 그게 악의 무서운 점이라는 것을 악마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관에서 후원을 받는 문제로 담당 복지사와 대화를 나누던 정인을 보면 정인의 '선택'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살아야 하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거예요.

노닥거릴 여유가 있으면 저도 애들이랑 몰려다녔을거고,

돈만 있으면 저도 에어맥스 구겨신었을거예요.

청소년 요금제만 아니었으면 밤새 게임이나 하고...!


'소원도 뭘 알아야 빌죠'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고르는 '선택' 을 해보고 싶어요'

'살아야 하니까 이렇게 산다'

정인의 속마음들은 다 이렇게 안쓰럽기만 하다.

늘 할머니의 말씀대로 '불평하면 사는게 지옥'이 되니 불편하게 살지 않아야 하며,

'상상도 지나치면 병'이기에 '기대'거나 '상상'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꽃을 모두 피워줄게.

네잎 클로버로 부족해? 그렇다면 다섯잎, 여섯잎, 일곱잎, 아니 만개의 잎을 가진 클로버를 네게 줄게.


악마의 그 어떤 유혹에도 '바람'의 '만약에'를 외쳐본적 없는 정인은,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후회'의 '만약에'를 나열한다.

'만약에 ~하지 않았더라면' 으로 줄줄이 나열되는 후회의 말들을 뱉을 수록 공기중에 가득차며 오히려 그 상상들은 더 먼곳으로 멀어지는것만 같았다.

만약에.. 그 다음은 어떡하지?

정인은 악마의 손에 이끌려 상상 속의 '만약에' 세계를 체험해 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난 잃어버리기 싫어. 내 마음대로 안풀린다고 걷어차버리고 싶지도 않아.

기억도, 삶도, 세상도.

정인이는 매혹적이고 황홀하며 현실을 잠시 잊게해줄 만약에의 '가짜' 삶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신의 삶을 오롯이 책임지면서 사는 '진짜' 삶을 택한다.

방법이 있을거예요.

살아가면서 굳은 살이 생길거예요.


아니요 필요 없어요.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현재도 나한테 풀기 어려운 문제인데요 뭐.

내 삶으로 돌아갈래요.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불평하면 지옥이된다고.

만가지 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또어떻게 하나도 안따지고 살겠어요.

만의 하나, 그리고 그것때문에 놓친 구천구백구십구개의 가능성 사이에서 내 식대로 방법을 찾아볼게요.


소년 정인은 현실의 삶에 충실히 '책임'지며 살기로 했다.

한바퀴 돌아 제자리일지라도, 그것은 홈런을 때리고 한바퀴 돌아 1점을 따낸, 그러니까 '뭔가' 달라진 인생이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라고.

정인은 한걸음 내디뎠다. 또 한걸음. 다시 한 걸음.

정인의 발이 닿는 곳이 곧 길이었다.

악마와의 계약은 끝내 성립되지 못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마코토가 시간을 다룰줄 알면서도 시간을 사용했던건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클로버>의 정인이도 '난 다 들어줄 수 있어'라는 악마의 유혹에 기껏해야 현재의 '불편함'을 조금 해소할만한 바퀴벌레잡기와 와이파이 세칸정도로도 만족해했다. 과한 숙제도, 원치않던 언어능력도 손사레를 쳤다.

한줄평에 썼던것 처럼 그 '만약에'라는 상상은 바람도 가지고 있지만 후회의 형태를 가질 경우가 더 많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할 수 없어도 후회,할 수 있어도 후회.

중학생인 소년도 바람과 후회가 섞인 '만약에'라는 말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진짜 삶에 책임지며 오롯이 걸어가는데, 성인인 나는 그렇게 하고 있나 계속해서 돌아보게된다.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변상해야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하고, 도와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정인이가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과 마주하면서 자신이 해야할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며 인생의 주인으로서 책임지며 한걸음씩 떼는 장면이 눈부시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가상 캐스팅 3인.

헬렐(고양이)은 배우 이도현, 그리고 정인은 아역배우 최현진(고양이 상으로 캐미가 맞을듯 하다), 그리고 정인의 친구 재아는 아역배우 김민서(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다)


해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비추고,

비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내린다.

마태복음 5장 45절을 변형하여 인용한 책의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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