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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수호대 ㅣ 꿈꾸는돌 35
김중미 지음 / 돌베개 / 2023년 3월
평점 :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이른바 『대포읍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김중미 작가의 신작 『느티나무 수호대』가 출간되었다.
이주민들의 가족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의 간단한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이다. 느티나무의 보호를 받던 친구들이 느티나무를 수호(守護: 지키고 보호함)하고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와서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한지,
사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한 곳에서 서서 수고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도 봄부터 가을까지 쉼없이 일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땅 밑에서 하는 분주한 일들에 대해 잘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도 인간 못지 않게 복잡다단하다.
우리는 주변의 다른 생물들과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왔지만
때때로 우리를 해치는 존재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런것 처럼.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숲'은, 나무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풀, 덩쿨을 비롯하여 작은 나무와 큰나무, 작은 동물과 큰동물들이 땅에서 어울렸으며 먼나라까지 여행갔던 철새들과 내그내새, 작은 벌레들까지 계절과 어울어지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숲의 속성이다.
지금은 비록 덩그러니 언덕 위에 홀로 남아 있는 느티나무가 하나 있다. 이 느티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이루는 '대포읍'이라는 마을은 베트남, 미얀마, 중국, 서아프리카 등 다문화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느티나무는 수백년전부터 이곳에서 자리를 마을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마을을 지켜왔다.
당산나무, 큰나무, 해나무라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는 대포읍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애어른 할것 없이 추억이 얽혀 있다.
나는 대포읍의 당산나무로 홀로 살아남은 것이
자랑스럽기보다 미안하고 아프다.
수시로 숲의 일원으로 살 때를 그리워했지만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가장 평화로운 때는 아이들을 누여놓고 간 엄마들을 대신해
산들바람을 불어 줄 때였다.
아기들을 돌보며 나는 마을 공동체와 유대감을 느꼈다.
조금씩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지고,
어둠이 사라진 밤을 견디는 법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도시의 속도를 아직 따라가지 못한다.
홀로 있지만 '숲'이라는 공동체를 이뤘었고, 지금은 '마을'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느티나무에는 판타지적인 비밀 한가지를 가지고 있다.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의 정령 '느티샘(홍규목)'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대포읍의 대포초등학교 기간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나아가 아이들을 느티나무 안쪽의 신비한 공간으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는 환대하며 맞이하기에 아이들에게 있어 '소중한 곳' 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자신들이 받은 소중함을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하면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다문화 꺼져라, 다문화로 감성팔이하냐", '"중국으로 꺼지래", "그런말 나도 똑같이 들었어. 아프리카로 가라는 말 한두번 들은게 아니야" 등의 말을 많이 들어왔던 친구들이였다. '다문화 아이들'을 '너희'라고 말하는 것에도 결코 다채롭고 다양하다는 뜻이 아닌 '루저'집단을 말하는 것만 같이 아파하던 시절도 있었다.
고맙고, 대견하다. 견뎌줘서. 너는 참 강한 아이구나
반가워. 언제든지 와서 쉬다 가도 돼.
환대 받는 기분, 처음 본 나를 환대해줬어.
환대해 준 덕분에 용기가 났거든.
고맙다, 대견하다, 반갑다는 말은 어려운 말이 아님에도 자주 건내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해 주며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면서 존재하며 견뎌냈을 애씀과 대견함을 인정해주고, 지금껏 힘내서 살아와줘서,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고맙다는 이 따뜻함이 가득 담긴 말은, 온 몸으로 '환대'받는 기분 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환대의 경험은 '인정'에서 나아가 '응원'이 된다. 앞으로의 삶에도 살아갈 '힘'과 '용기'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전달되어 퍼지게 된다. 이는 '희망'이 되어 더 나은 삶을 향해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다.
마을의 재개발추진으로 느티 언덕이 통채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언제든 끝이 있는 법이야" 라며 계속해서 사라지던 숲과 자신의 가족과 조금씩 변하고 있던 주변 환경 속에서 이미 자신의 끝을 받아들인 느티샘과는 달리 아이들은 샘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재개발과 느티샘의 이야기를 듣고 망설임 없이 '레인보우 크루' 2기를 만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티 언덕을 알리고 지켜내고자 한다.
"이번 청소년 댄스 대회는 온라인으로 열린대. 각 팀이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거기서 열팀을 뽑아서 한국 결선 대회를 열고 유튜브로 중계한대. 그때 우리 느티나무 얘길 하려고."
BTS는 러브 마이셀프 캠페인을 통해 환경, 평화 등의 주제를 많이 알렸던 그룹이다. 때문에 BTS의 노래와 춤으로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같고 같이 목소리를 낸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이들은 '다문화 청소년 댄스 그룹'인 '레인보우 크루'를 다시한번 만들어 내고자 했다. 춤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자신감 있는 모습과 그 자신감과 용기가 이어질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스스로의 능력을 끌어 올리면서도 공동체 문화까지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린 서로 다 다르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진 않아요.
이렇게 대포읍에서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레인보우 크루 친구들은 우리 모두 '동등'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함께'하는 책임감, 우정, 연대 의식으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래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위기가 닥치면 나 이외의 존재에게 더 집중하고 살핀다.
위기일수록 이웃과의 협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만큼 슬기롭고 이타적인 존재는 드물다.
내게는 그것만이 희망이다.
나는 아직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더 믿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안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힘을 믿는다.
『느티나무 수호대』 의 느티샘과 대포읍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일방적으로 빼앗기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다.' 일방적인 의존이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지지와 버팀목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줄 알며, '함께' 살아갈 줄 안다. 느티샘에게 받았던 다정함을 기꺼이 타인에게 베풀고 공유하며 키워나가는 모습은 아직은 우리에게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연대의 힘을 믿고싶게 만든다.
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
누구도 다스리지 않고 서로 협력해가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김중미 『느티나무 수호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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