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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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는 탈북 여성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는 장애인을, 그리고 『버샤』에서는 난민을. 창비에서 최근 나온 신간들은 모두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소외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직 내리지 않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직 짓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 술에 벌써 취하였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쟁에 상처 입고 죽었습니다.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나는 더 이상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13C 페리스안 시인 루미,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소설 중간에 나오는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라는 시는 이러한 난민들의 입장을 짧고 강렬하게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는 히잡을 쓴 여성이 출국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다. '이란', '공항'

그리고 그 두 단어는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되었던 나세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에 얼핏 지나가는 뉴스로 공항을 떠났던 나세리가 결국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실제로는 이란의 왕정 반대운동으로 추방당한 나세리가 난민신청을 하여 영국으로 가던 도중 프랑스에서 난민서류를 도난당해 무국적상태가 되어 터미널에 머물게 되었지만, 영화 터미널에서는 톰행크스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모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 되어 입국을 거부당하면서 난민신세가 되어 뉴욕 공항에 머무는 이야기로 그려졌다.

실화건 영화건 모두 난민이 되어 공항에서 머무는 이야기로, 이 소설 속에서의 이란 가족 역시 아직 영토구역이 아닌 공항에서 한 난민 심사 신청이 효력을 갖지 못하고 불회부결정이 나면서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생활이 곤궁해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재난으로 어쩔 수 없이, 종교나 사상 등의 정치적 이유로 자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집단적 망명자, 이재민들을 "난민"이라 한다.

거대한 성이자 화려한 시장통 같은 "공항"은 사람들이 여행 등으로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엇갈리며 오가는 사람들로 닫혀있으면서도 열린 공간이자 설렘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으니

우린 이미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

표명희 『버샤』 中


'국경'과 '마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 대화는, 이 책이 '난민'과 '공항'에 관한 이야기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난민 인정 심사를 볼기위해 기다리던 중 세계적 전염병 유행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텅 빈 출국장에서 생활하는 버샤 가족들을 통해 공항의 재발견과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이라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무슬림 가족들이 난민 심사를 위해 공항에 체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버샤』로 써냈다.


뱅크시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남긴 벽화 '발레리나'처럼 무모하지만 경쾌하고 매력적인 창작물에 감명받은 작가는 버샤 역시 내전 중 실어증에 걸렸지만 공항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어떻게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는지 그 과정 속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쿠란에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엄연히 나와있는데도 '남녀 유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소외된 무슬림의 딸들은 그런 풍토에 적응해 오며 자유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불의와 구속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무슬림 '여자'로 길들여 온 결정적인 수단이 히잡이라는 생각에 히잡을 싫어하던 버샤는 달랐다. 이슬람을 사랑하면서도 '일방통행'처럼 무슬림 딸들에게 하나의 길만 주어진 가부장제, 남자는 가해자여도 거리낄게 없지만 여자는 피해자여도 죄인이 되는 이슬람 문화는 과감하게 비판할 줄 아는 독립적인 성향의 버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익명의 '난민'이 아니라, 정체성 고민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인권에 대한 환대의 가치를 깊이있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난민 가족 버샤가족이 어쩌다 난민이 되었으며 공항 출국장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전반부 이야기와, '한국판 터미널'로 난민을 주제로 기사화 되었다가 점점 버샤의 '개인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기사로 인한 갈등, sns의 파급력, 인권변호사와의 만남, 진우와의 로맨스를 담은 중반부 이야기, usb 편지, 교회 바자회, 코로나로 인한 공항 폐쇄, 버샤의 '개인적인 사건'에 숨겨진 반전과, 목소리를 되찾으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내며 극복하려 용기내는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어린 버샤와 더 어린 버샤의 동생들의 시선으로 그려나갔다는 점이다.

'난민 수용소에서는 난민처럼 있어도 되지만 공항에서는 이용객처럼 있어야 한다'라는 규칙아래 '난민 인정을 간절히 바라는 난민'으로서 국민도 아니고 난민도 아닌 존재로 공항에서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 버샤 가족.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렁'일 지언정 '난민 캠프에 비하면 호텔급'인 공항은 마냥 놀이터처럼 그려졌다. 수많은 면세점을 보면서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 놀러온것 같은 기분으로 게이트를 누비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수'가 쏟아지는 화장실을 내집처럼 드나들고, 여행에 들뜬 사람들이 탑승 게이트에서 잃어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던 공항의 모습을 '문화적 차이'라는 관점과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색다른 시점에서 관찰되고 묘사된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관점 두번째는, 이 중동 아랍소녀와 교류하게 되는 공항 비정규직 근무자 진우(J)가 버샤와 가깝게 지내면서 중동 현대사 공부를 비롯하여 중동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와 가깝게 느끼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건 그 사람의 '배경'과 '환경'도 함께 다가온다는 것이기에, 진우는 버샤가 속해있는 문화를 우리와 다른, 먼곳의 이야기가 아닌 밀접한 교집합 관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진우와 진우 친구를 통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대한 인식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와 입장 차이 까지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우리의 통념, 상식, 편견 들에 대해서도 친구들과의 의견다툼으로 다루면서 거꾸로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는 화법이 이 자칫 사회적인 문제로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항,분노에서 시작한 혁명은 결코 성공 할 수 없어.

그건 사랑에서 출발해야한단다.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건 세상에 없단다.

표명희 『버샤』 中


더욱이 이야기는 무겁지 않도록 다루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포용, 연대, 영향력, 그렇게 결국 '사랑'으로 흘러가게 된다.


버샤가 버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스스로 말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영향력이 컸다. 그리고 버샤는 이제 그 영향력을 다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할일을 찾았어요"라는 J의 말은, 이 책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함께 부딪혔던 여러 난관과 편견과 소수목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여 이제는 생각을 접고 우리 역시 실천할 때다.

섣부르지 앓게 차분하고 치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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